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13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비핵화 대화 증진을 위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추가로 축소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스톡홀름 협상’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미·북 비핵화 실무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지만 한국 정부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14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이날 한국행에 오른 에스퍼 장관은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의) 협상 증진에 도움이 된다면 한국에서 시행하는 미국의 군사 활동을 조정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군사훈련 조정은)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외교와 대화의 문이 열려 있도록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조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 측에서 유연한 접근법으로 미·북 협상에 임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에스퍼 장관의 이번 발언도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가에선 에스퍼 장관이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기 위해 연합훈련 축소를 일부러 언급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날 밤 한국에 도착했다. 그는 15일 국방부에서 열리는 SCM에서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한·미 군사안보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한국 측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유지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한기 합참의장과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이날 국방부에서 제44차 한미군사위원회(MCM)를 열고 한반도 안보 상황과 연합방위태세를 점검했다. 양국은 회의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 “양국 의장은 지역 안보와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다국적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국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다국적 파트너십은 한·미·일 안보협력, 더 나아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회의에서 밀리 합참의장은 지소미아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회의 뒤 참석한 ‘한·미 동맹의 밤’ 행사에서 ‘지소미아를 논의했느냐’는 질문에 “조금(a little bit) 했다”고 짧게 답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