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내년 현금복지 '중복 살포'만 2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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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예산안 분석해보니…
정부가 기초연금 주는데
지자체는 노인·어르신 수당
부처들 판박이 청년 지원도
정부가 기초연금 주는데
지자체는 노인·어르신 수당
부처들 판박이 청년 지원도
대기업에서 지난해 말 정년퇴직한 A씨는 노인을 상대로 교육과 상담활동을 하면서 정부로부터 매달 10만원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재능나눔활동’ 사업 덕분이다. 고용노동부는 ‘신중년 사회공헌활동 지원’이라는,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사업을 하고 있다.
정부의 현금성 복지사업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중복지원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 부처 간에는 물론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간, 심지어 같은 부처 내에서도 이름만 바꿔 비슷한 사업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현금지원 예산사업 중 중복사업으로 분류된 규모가 2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내년도 현금 지원 복지사업은 올해보다 10.6% 늘어난 54조3017억원으로 정부 예산안에 편성됐다. 이 중 약 40% 이상이 중복으로 편성된 셈이다. 집계 결과 기초연금(13조1765억원), 영유아 보육료 지원(3조4056억원), 아동수당(2조2833억원),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대상자 변경(1조1991억원), 저임금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1조1629억원), 내일채움공제(7800억원) 등이 꼽혔다.
일례로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최대 3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지자체별로 ‘어르신 공로수당’ ‘품위유지수당’ 등의 명칭으로 10만원 안팎을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한 고용부 내일채움공제 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와 사실상 같은 사업이다.
청년 '적립통장'사업에 3개 부처·10개 지자체…묻지마 '세금 낭비'
“식량 공급 업무를 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왜 복지 사업까지 챙깁니까?”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에게 이같이 따졌다. 내년 농식품부 예산안에 90억원이 새로 편성된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시범사업’을 문제 삼았다. 임신부 및 출산 6개월 이내 여성에게 연 48만원 한도에서 농산물을 살 수 있는 현금성 바우처를 지급하는 이 사업은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유사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의결이 보류됐다. 부처 간 ‘묻지마식’ 중복 지원
현금성 복지 사업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중구난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같은 부처 내에서도 겹치는 사업이 즐비하다. 이 때문에 현금지원 예산 사업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현금성 바우처 사업과 합치면 60조원이 넘는다. 전체 예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현금지원 복지 예산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 운용의 비효율이 급속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재정 악화의 주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금지원 예산 사업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7%에서 올해 10.2%로 높아졌다. 내년에는 정부 예산안 기준으로 10.6%에 달한다. 매년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부처 간 조정 없이 일명 ‘묻지마식 현금 지원’이 생겨나는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복지부는 고령자 채용 후 3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할 때 인건비를 지원하는 ‘시니어 인턴십제도’를 시행 중이다. 6개월까지 월 최대 45만원을 지원한다. 고용부 역시 3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하면 인건비를 지급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지원금’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월 최대 80만원을 1년까지 지원한다. 정부는 2020년도 예산안에 같은 내용인 두 사업의 예산으로 각각 124억원과 276억원을 편성했다.
‘청년저축계좌’는 저소득층 청년 재직자가 3년 동안 매월 10만원씩 360만원을 적금하면, 3년 뒤 1440만원을 돌려주는 복지부의 신규 사업이다. 2020년도 예산안에 신규 사업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정부 지원이 이미 존재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5년간 3000만원을 적립해주는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사업을 시행 중이다. 내년 예산안으로 3399억원을 배정받았다. 고용부도 ‘청년 내일채움공제’를 통해 청년 재직자에게 적금을 지원해주는 통장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7787억원이 편성됐다.
심지어 복지부 내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지원 금액과 조건만 다른 ‘청년희망키움통장’ ‘희망키움통장Ⅰ’ ‘희망키움통장Ⅱ’ ‘내일키움통장’이 그것이다. 부처 안에서까지 사업이 중복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금지원 ‘경쟁’하는 정부-지자체
정부와 지자체 간 중복되는 사업도 즐비하다. 복지부의 ‘청년저축계좌’ 사업과 비슷한 형식의 ‘적립형 통장’은 거의 대부분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에 ‘희망두배 청년통장’, 경기도 ‘일하는 청년통장’, 부산시 ‘청년날개통장’, 전라남도에는 ‘청년희망 디딤돌통장’이 있다.
광역자치단체뿐만 아니다.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전남 영광군의 ‘청년희망플러스 통장’, 경기 양평군의 ‘청년통장’도 존재한다. 매달 일정 액수를 넣으면 나머지 금액을 지원해주는 ‘적립형 통장’의 종류가 10개가 넘는다.
만 7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복지부의 ‘아동수당’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1200억원가량 늘어난 2조2833억원이 배정됐다. 하지만 비슷한 형태의 아동수당이 충청남도의 ‘아기수당’, 강원도의 ‘양육기본수당’, 인천 강화군의 ‘양육비’ 사업 등의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미취업 청년에게 구직활동 지원금으로 매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주는 고용부의 신규 사업 ‘국민취업지원제도’(2771억원)도 중복 사례다. 이 사업은 청년의 구직 활동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매월 50만원씩 지급하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구직지원금’과 유사하다. 성남시에는 만 24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기본소득’이 있다. 성남에 거주하는 24세 청년은 세 종류 수당의 지원 대상이 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중복 지원에 따른 부정 수급 우려도 크다. 예결위 관계자는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을 통해 수급 정보가 공유되는 정부 복지 서비스와 달리 지자체 자체 사업은 중복 신청하더라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상훈/임도원 기자 uphoon@hankyung.com
정부의 현금성 복지사업이 우후죽순으로 늘면서 중복지원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 부처 간에는 물론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간, 심지어 같은 부처 내에서도 이름만 바꿔 비슷한 사업이 산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현금지원 예산사업 중 중복사업으로 분류된 규모가 2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내년도 현금 지원 복지사업은 올해보다 10.6% 늘어난 54조3017억원으로 정부 예산안에 편성됐다. 이 중 약 40% 이상이 중복으로 편성된 셈이다. 집계 결과 기초연금(13조1765억원), 영유아 보육료 지원(3조4056억원), 아동수당(2조2833억원),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대상자 변경(1조1991억원), 저임금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1조1629억원), 내일채움공제(7800억원) 등이 꼽혔다.
일례로 정부가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최대 3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지자체별로 ‘어르신 공로수당’ ‘품위유지수당’ 등의 명칭으로 10만원 안팎을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중소기업에 재직하는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한 고용부 내일채움공제 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와 사실상 같은 사업이다.
청년 '적립통장'사업에 3개 부처·10개 지자체…묻지마 '세금 낭비'
“식량 공급 업무를 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왜 복지 사업까지 챙깁니까?”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박완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재욱 농식품부 차관에게 이같이 따졌다. 내년 농식품부 예산안에 90억원이 새로 편성된 ‘임산부 친환경 농산물 지원 시범사업’을 문제 삼았다. 임신부 및 출산 6개월 이내 여성에게 연 48만원 한도에서 농산물을 살 수 있는 현금성 바우처를 지급하는 이 사업은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유사 사업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의결이 보류됐다. 부처 간 ‘묻지마식’ 중복 지원
현금성 복지 사업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중구난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중앙과 지방자치단체, 심지어 같은 부처 내에서도 겹치는 사업이 즐비하다. 이 때문에 현금지원 예산 사업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처음으로 50조원을 돌파했다. 현금성 바우처 사업과 합치면 60조원이 넘는다. 전체 예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현금지원 복지 예산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 운용의 비효율이 급속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재정 악화의 주요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금지원 예산 사업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9.7%에서 올해 10.2%로 높아졌다. 내년에는 정부 예산안 기준으로 10.6%에 달한다. 매년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부처 간 조정 없이 일명 ‘묻지마식 현금 지원’이 생겨나는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복지부는 고령자 채용 후 3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할 때 인건비를 지원하는 ‘시니어 인턴십제도’를 시행 중이다. 6개월까지 월 최대 45만원을 지원한다. 고용부 역시 3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하면 인건비를 지급하는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지원금’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월 최대 80만원을 1년까지 지원한다. 정부는 2020년도 예산안에 같은 내용인 두 사업의 예산으로 각각 124억원과 276억원을 편성했다.
‘청년저축계좌’는 저소득층 청년 재직자가 3년 동안 매월 10만원씩 360만원을 적금하면, 3년 뒤 1440만원을 돌려주는 복지부의 신규 사업이다. 2020년도 예산안에 신규 사업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비슷한 성격의 정부 지원이 이미 존재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5년간 3000만원을 적립해주는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사업을 시행 중이다. 내년 예산안으로 3399억원을 배정받았다. 고용부도 ‘청년 내일채움공제’를 통해 청년 재직자에게 적금을 지원해주는 통장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에는 7787억원이 편성됐다.
심지어 복지부 내에서도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지원 금액과 조건만 다른 ‘청년희망키움통장’ ‘희망키움통장Ⅰ’ ‘희망키움통장Ⅱ’ ‘내일키움통장’이 그것이다. 부처 안에서까지 사업이 중복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현금지원 ‘경쟁’하는 정부-지자체
정부와 지자체 간 중복되는 사업도 즐비하다. 복지부의 ‘청년저축계좌’ 사업과 비슷한 형식의 ‘적립형 통장’은 거의 대부분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에 ‘희망두배 청년통장’, 경기도 ‘일하는 청년통장’, 부산시 ‘청년날개통장’, 전라남도에는 ‘청년희망 디딤돌통장’이 있다.
광역자치단체뿐만 아니다. 기초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전남 영광군의 ‘청년희망플러스 통장’, 경기 양평군의 ‘청년통장’도 존재한다. 매달 일정 액수를 넣으면 나머지 금액을 지원해주는 ‘적립형 통장’의 종류가 10개가 넘는다.
만 7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하는 복지부의 ‘아동수당’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1200억원가량 늘어난 2조2833억원이 배정됐다. 하지만 비슷한 형태의 아동수당이 충청남도의 ‘아기수당’, 강원도의 ‘양육기본수당’, 인천 강화군의 ‘양육비’ 사업 등의 형태로 지급되고 있다.
미취업 청년에게 구직활동 지원금으로 매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주는 고용부의 신규 사업 ‘국민취업지원제도’(2771억원)도 중복 사례다. 이 사업은 청년의 구직 활동을 돕는다는 목적으로 매월 50만원씩 지급하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구직지원금’과 유사하다. 성남시에는 만 24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을 지원하는 ‘청년기본소득’이 있다. 성남에 거주하는 24세 청년은 세 종류 수당의 지원 대상이 된다.
정부와 지자체의 중복 지원에 따른 부정 수급 우려도 크다. 예결위 관계자는 “사회보장정보 시스템을 통해 수급 정보가 공유되는 정부 복지 서비스와 달리 지자체 자체 사업은 중복 신청하더라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성상훈/임도원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