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유로 ‘뇌물죄’를 정면에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중범죄’나 ‘비행’ 혐의가 있다는 기존의 모호한 화법에서 벗어나 헌법에 명시된 핵심 탄핵 사유인 뇌물수수를 콕 찍어 공세에 나선 것이다.

1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뇌물 범죄로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할 때 미국의 군사원조를 대가로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비리 조사를 종용했고, 이는 뇌물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펠로시 의장은 “(바이든 전 부통령에 대한) 가짜 조사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군사원조를 허용 또는 보류하는 것은 뇌물”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는 뇌물죄에 관련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민주당은 그동안 탄핵 사유로 뇌물 수수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며 “펠로시 의장의 언급은 궤도 수정을 하겠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부적절한 대가를 요구했다고 비판했지만, 압도적인 탄핵 지지 여론을 끌어내진 못했다.

WP는 민주당이 탄핵 사유로 제기됐던 중범죄 또는 비행 혐의에 대해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모호한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민주당이 뇌물죄 카드를 꺼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명백한 탄핵 대상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주겠다는 의도로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있고, 뇌물죄 무죄를 증명할 증거가 있다면 의회에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과 백악관은 민주당이야말로 트럼프 대통령이 해명할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민주당이 뇌물죄 증거로 제시한 윌리엄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 대행과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의 증언에 대해 “제3자의 전언을 전달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미국 헌법 2조4항은 ‘대통령, 부통령, 그리고 미국의 모든 공무원은 반역죄, 뇌물죄, 또는 그 밖의 중대범죄 및 경범죄로 탄핵을 받거나 유죄판결을 받으면 그 직에서 파면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탄핵 절차에서 하원은 소추(기소)권을, 상원은 심판권을 갖는다. 435명의 하원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 상원에선 100명의 의원 중 3분의 2가 찬성해야 탄핵이 결정된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