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칼럼] 더뎌 보이는 자율주행차 상용화와 그 미래
곧 실현될 것처럼 보였던 자율주행차의 도심 운행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 분야 선구자인 일론 머스크는 2015년에 “2017년까지는 완전히 자율적인 자동차가 나온다”고 장담했다. GM과 알파벳(구글의 모기업)도 비슷한 전망을 발표했다.

하지만 완전히 자율적인 차가 가까운 미래에 나올 가능성에 회의적인 견해들이 퍼지고 있다. 도심의 복잡한 환경에서 자율차의 인공지능(AI)이 환경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일에 예상보다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사람들의 삶에서 긴요하므로 자율차의 도입이 늦어지면 미래 예측과 대응에서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자율차가 교통사고를 없애리라는 기대가 멀어지면서 나이 많은 운전자들을 위한 대책도 시급해졌다.

이런 사정은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이라 불리는 현상과 관련이 깊다. 로봇공학 선구자인 한스 모라벡의 표현을 빌리면 1980년대에 로봇공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전통적 가정과 달리 높은 수준의 추론에는 아주 작은 계산이 필요하지만, 낮은 수준의 지각동작 재능들(sensorimotor skills)엔 엄청난 계산 능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에겐 심상하게 보이지만 동물들의 지각동작 재능은 6억 년에 걸쳐 이뤄진 진화의 성과다. 수많은 실험 가운데 가장 나은 것을 추려내는 자연선택 과정이 무수히 반복돼 이제는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 능력을 한 세대 전에 나온 로봇들이 잘하도록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사정은 “로봇은 어려운 일은 쉽고, 쉬운 일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한다(Robots find the difficult things easy and the easy things difficult)”는 역설의 형태로 단순화됐다.

가전제품 가운데 진공청소기의 자동화가 가장 어려운 것도 이 역설로 설명된다. 손발을 많이 쓰는 단순 노동 일자리가 지적 계산 기능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중간 관리 계층의 일자리보다 인공지능의 영향을 덜 받는 현상도 그렇다.

자율차의 역사 역시 이런 설명을 지지한다. 미국 국방부 연구소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04년 주최한 자율차 대회는 미 서부 모하비 사막에서 240㎞ 코스를 주파하는 경기였다.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차는 겨우 12㎞를 주행하고 멈췄다. 2005년 제2차 대회에선 4대가 10시간 안에 주파했다. 이어 2007년의 도심 주파(urban challenge) 대회는 교통 신호를 따르고 다른 차들과 함께 달리는 96㎞ 코스를 6시간 안에 주파하는 경기였다. 공군 기지에서 열린 이 대회에선 4대가 합격했다.

이처럼 빠르게 발전한 자율차가 완벽한 자율성을 획득하려면 현실의 도심에서 주행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에 의존하는 터여서 자율차는 현실 상황에서 주행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불완전한 자율차를 사람들이 사는 도심에 풀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율차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이런 난제 앞에서 머뭇거린다.

흥미로운 접근은 중국의 시도다. 자율차 수준에 맞도록 도시를 설계해 자율차의 도입을 앞당기고, 자율차가 기계학습을 통해 진화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이다. 개인의 생명과 복지를 가볍게 여기는 전체주의적 발상이고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가능한 방안이지만, 자율차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데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에 관한 것들은 흔히 ‘지수적(exponentially)’으로 성장한다. 눈덩이가 구를수록 점점 더 빨리 커지는 식이다. 집적회로의 발전을 예측한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전형적이다. 슈퍼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의 발전도 그러했다. 따라서 자율차의 성능 향상에 꾸준히 투자한 기업들이 언젠가는 갑자기 완벽한 기술을 내놔 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첨단기술에 관해 품은 야심과 근년의 놀랄 만한 성취를 생각하면 진지하게 음미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