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규제 철폐론자' 은성수, 왜 소신 접었나
“여기 있는 기자 중 절반은 ‘정책 후퇴’라고 쓰실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고민이 많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은 지난 14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파생결합증권(DLS) 사태’ 재발방지 대책을 직접 설명한 뒤 이런 말을 남겼다. 평소 “사모펀드 규제는 대폭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자신의 소신과 정반대 정책을 발표하는 어색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은 금융위원장을 맡기 직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과 수출입은행장을 거쳤다. 국내외를 무대로 자본시장의 생리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리다. 당시 그는 사모펀드의 자산운용과 관련해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느꼈다고 한다.

일명 ‘사모펀드 10계명’이라고 이름 붙인 규제완화론을 지론으로 삼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사모펀드 관련 규제는 핵심적인 10개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시장 자율에 맡기자는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지난 8월부터 사모펀드발(發) 악재가 줄줄이 터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가 연루된 ‘조국 펀드’ 논란에 이어 ‘DLS 사태’와 ‘라임자산운용 파문’으로 개인투자자의 대규모 피해가 이어졌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내 소신만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입장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금융위가 발표한 DLS 재발방지 대책은 수십 쪽 분량이다. 이 가운데 은 위원장이 끝까지 고심한 대목은 사모펀드 일반투자자 요건을 1억원 이상에서 3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금융위는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를 명분으로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췄다. 불과 4년 만에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이 되레 크게 높아진 것이다. 은 위원장은 “두 달 동안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지만 견해차가 너무 컸다”며 “1억~3억원 구간의 투자자는 재간접펀드나 공모펀드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 위원장은 “행정편의적인 규제 양산으로 모험자본의 순기능이 훼손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제도 설계를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모펀드 시장 전체가 위축될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