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인상 '도미노' 걱정"…美 제재에 민생고 커져
[르포] "하룻밤 새 휘발윳값 3배"…주름살 깊어진 이란 시민
"설마 했는데 이럴 수가 있나요"
17일(현지시간) 오후 만난 테헤란 시민 알리 레자(36)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테헤란에서 차량호출 서비스 '스냅'을 이용해 자가용 택시 영업으로 생계를 꾸린다.

이란 정부는 15일부터 1L에 1만 리알(약 100원)이던 휘발유 가격을 1만5천 리알(약 150원)로 올렸다.

가격 인상과 함께 살 수 있는 휘발유의 양도 한 달에 60L로 제한했다.

이보다 더 사려면 무려 200% 높은 L당 3만 리알(약 300원)을 주고 사야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이란의 휘발유 가격은 여전히 '최저가' 수준이지만 이란이 석유가 풍부한 산유국이고 국민 소득수준을 고려하면 서민층에게는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다.

출퇴근에 자가용을 이용한다는 시라지(50) 씨는 "한 달에 줄 잡아 휘발유를 200L 정도를 쓰는 데 제한량 60L는 너무 적다"라며 "휘발유 가격이 하룻밤 사이에 사실상 세 배가 된 것이다"라고 불평했다.

알리 레자 씨처럼 택시 영업을 하는 차량에는 한도량이 월 300L로 높지만,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다른 물가도 도미노처럼 오를 수 있다는 게 이란 서민들의 가장 큰 근심거리다.

알리 레자 씨는 "스냅 서비스 가격도 곧 크게 오를 것"이라며 "다른 물가는 그럼 얼마나 더 오르겠느냐"라고 걱정했다.

정부가 발표한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40% 정도다.

미국이 지난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하고나서 제재를 복원한 뒤 이란 리알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물가가 치솟았다.

시라지 씨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정부가 발표하는 물가는 체감 물가와 차이가 크다"라면서 "지난 한 해 물가가 두 배 정도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휘발유 가격은 물가 전반과 직접 연결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미국의 제재 탓에 이란 국민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휘발유 가격까지 올라 걱정이 크다"라면서 한숨을 지었다.

[르포] "하룻밤 새 휘발윳값 3배"…주름살 깊어진 이란 시민
정부의 휘발유 가격 인상이 발표된 15일과 16일에는 테헤란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꽤 격렬하게 벌어졌다.

집회·시위를 엄격히 통제하는 이란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알리 레자 씨는 "나도 그 시위에 참여해 정부에 항의하고 싶었지만 출동한 경찰이 무서워 거리로 나가지는 못했다"라며 "휘발유 가격을 다시 내렸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인상은 공교롭게 이란 석유부 장관이 바로 전날 "휘발유 가격을 변동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발표한 다음날 전격적으로 발표돼 시민들의 불만에 불을 지폈다.

정부 역시 사재기를 우려해 예고없이 15일 0시 실행과 동시에 인상 사실을 공표했다.

민심이 동요하자 이란 정부도 이를 달래는 데 기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16일 "휘발유 가격 인상분을 정부 재정으로 한 푼도 귀속하지 않겠다"라며 "이란의 저소득층의 은행 계좌로 그대로 되돌아갈 것이다"라고 약속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노바크트 예산계획청장은 "앞으로 열흘 안에 첫 생계 보조금이 계좌에 입금될 것이다"라며 "이 보조금은 국민의 70%에 해당하고 매월 지급된다"라고 발표했다.

레자 라흐마니 내무부 장관도 17일 "국가 경제가 어려워서 휘발유 가격을 인상한 것은 아니다"라며 "휘발유 가격 인상에 편승해 다른 상품의 가격을 올려 국민에 해를 끼친다면 이는 불법 행위로 엄중히 대처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은 17일 "정부는 휘발유 가격 인상의 이득을 국민에게 가능한 한 신속히 돌려줘 우려를 잠재우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라며 "다른 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전력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이란 국영방송에서는 17일 경제 전문가가 출연해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물가가 올라서는 안 되며 정부가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전망하는 시사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에는 강하게 대처했다.

이란 정부는 시위가 조직되고 확산하는 통로인 인터넷을 16일 밤부터 안보상 이유로 전면 차단했다.

그러면서 관공서와 은행을 공격하고 도로를 막는 등 물리력을 동원한 시위는 '일부 폭도의 선동'으로 규정했다.

이란 경찰청은 17일 "적들(미국,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과 관련된 일부 개인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요구를 악용해 공공질서를 불안케 하려 한다"라며 "평화를 원하는 국민의 뜻에 따라 이들 불순분자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가까운 레바논과 이라크에서 민생고에 쌓인 분노가 폭발해 한 달 넘게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바람에 정부의 위상이 위기에 처한 만큼 이란 당국은 집단 행동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르포] "하룻밤 새 휘발윳값 3배"…주름살 깊어진 이란 시민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