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소액주주들이 지난 5월 말 서울 강남대로의 한전 강남지사 앞에서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전 경영진이 사퇴할 것을 촉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전력공사 소액주주들이 지난 5월 말 서울 강남대로의 한전 강남지사 앞에서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전 경영진이 사퇴할 것을 촉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3분기에 35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한수원이 분기별 결산을 공시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3분기에 손실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18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3분기 실적을 공시한 한국전력공사 강원랜드 한국지역난방공사 에스알 등 14개 공기업의 1~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0.6% 줄어든 3조5400억원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 이전인 2016년(18조4억원)과 비교하면 5분의 1, 첫해인 2017년(9조8967억원)에 비해선 3분의 1 수준이다.

공기업 수익이 크게 줄어든 것은 탈(脫)원전 등 정책 비용과 함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무더기 낙하산 인사 등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지울 것이란 우려가 높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예측한 39개 주요 공공기관의 2021년 부채비율은 167%로, 2년 전 예상치(152%)보다 15%포인트 높아졌다.
脫원전·정규직화 떠안은 공기업 '실적 곤두박질'…결국 국민부담 커져
2년 새 영업이익 3분의 1토막

주요 공기업들의 실적은 줄줄이 악화되고 있다. 철도회사인 에스알은 작년 1~3분기 5472억원의 이익을 냈으나 올해 1~3분기 2557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그랜드코리아레저는 같은 기간 9697억원에서 7403억원으로, 한국서부발전은 1779억원에서 914억원으로, 한국중부발전은 2460억원에서 877억원으로 줄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도 1~3분기 누적 이익이 3107억원에 그쳤다. 2011년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2016년 말 143.4%였던 이 회사 부채비율은 작년 160.6%로 상승한 데 이어 올 상반기 176.1%로 치솟았다.

14개 공기업 중 올 3분기 손실을 기록한 곳은 한수원(-351억원) 한국지역난방공사(-334억원) 한국가스공사(-1560억원) 등 세 곳에 달했다.

사회적 책임만 강조하는 정부

공기업 실적 악화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에너지 기업들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비용이 급증한 영향이 컸다. 대표적인 게 ‘에너지전환’이다. 경제성 높은 원전의 전력 생산을 줄이고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면서 원가 부담이 급증했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국제 연료가격까지 오르자 적자 폭이 커졌다는 게 전력업계의 설명이다. 3분기 기준 원전 이용률은 2016년만 해도 79.7%였으나 올해는 65.2%로 뚝 떨어졌다.

공기업들은 재무구조 악화와 무관하게 정규직 전환 및 신규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가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고용확대를 압박하고 있어서다. 2년 연속 적자가 불가피한 한전은 올해 검침·청소 등 비정규직 4740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본사 인력(9월 말 기준 2만3336명) 대비 20.3%에 해당할 만큼 큰 규모다.

윤한홍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한전 한수원 동서발전 등 7개 발전·전력 공기업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2018년 신규 채용한 직원이 2494명에 달했다. 이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한 해 1228억원 늘어난 것으로 계산됐다.

“저효율 고비용 계속”

더 큰 문제는 공기업들의 재무구조 악화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한 번 늘려놓은 정규직은 정년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정규직은 2016년 말 32만8480명이었으나 지난 9월 기준 40만9091명으로 3년도 안돼 24.5% 급증했다. 정부가 ‘사회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면서 ‘저효율-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전면 폐지한 데 이어 당초 약속했던 직무급제 시행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노동조합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기업들이 본질적인 기업 경영보다 사회공헌 확대 등 정부 성과를 내는 데만 치중하면서 경영 실적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고 말했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적자가 급증해도 정부 말만 잘 들으면 성과급까지 다 지급되는데 누가 효율성을 따지고 리더십을 발휘하겠느냐”며 “공기업 실적 악화는 정부 책임이 크다”고 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