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현장 찾은 강기정 수석 단식 투쟁을 시작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 단식 현장을 찾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식 현장 찾은 강기정 수석 단식 투쟁을 시작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 단식 현장을 찾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유지와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법안 철회’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9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에 항의해 삭발한 지 두 달 만이다. 제1 야당 대표가 대정부 투쟁 차원에서 삭발과 단식을 연이어 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를 막기 위해 무기한 단식투쟁을 시작하겠다”며 “죽기를 각오했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지소미아 파기 철회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운영법 처리를 포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와 선거법·공수처 법안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일이자 대한민국 존립이 달린 문제”라고 했다.

황 대표가 밝힌 단식의 표면적 이유는 ‘지소미아 유지와 패스트트랙 법안 저지’지만, 당 안팎에선 “인적 쇄신을 놓고 불거진 당 내분 사태와 자신의 리더십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겠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황 대표는 당내에서 ‘중진 용퇴론’ 등 물갈이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한 지난주부터 단식을 고민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초 발표한 ‘보수 대통합론’이나 문 대통령과의 영수 회담 제의도 이런 위기의식 속에 꺼내든 카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은 “온몸을 던지는 것 외엔 (정부·여당에) 저항할 방법이 없지 않으냐”며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늦게 강기정 정무수석을 내보내 만류의 뜻을 전했다. 강 수석은 “황 대표와 만나 ‘지소미아 문제를 놓고 힘을 모아야 할 상황에 단식을 하는 건 옳은 방향이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강 수석은 패스트트랙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청와대가 논의를 중단시킬 사안이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대표는 강 수석에게 “(지소미아 문제 등이) 잘 해결되면 단식을 바로 끊겠다”며 영수 회담 개최 필요성을 재차 내비쳤다. 황 대표는 청와대가 경호상 이유로 분수대 앞 천막 설치를 막자 이날 밤 여의도 국회로 옮겨 단식을 이어갔다.

이날 한국당 내에선 “지금 단식해서 얻는 실익이 뭐냐” “내년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언제까지 장외투쟁만 고집할 거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한 수도권 의원은 “인적 쇄신과 지도부 자성 요구는 외면한 채 위기 국면을 벗어날 생각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대여 투쟁도 좋지만 당 혁신안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날 이런 지적에 대해 “당을 쇄신하라는 국민 명령을 받들기 위해 저에게 부여된 ‘칼’을 들겠다”며 “국민 눈높이 이상으로 처절하게 혁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황 대표 단식에 대해 “문 대통령이 야당을 얕잡아 보고 있는데, 단식한다고 해결될 문제인가”라고 비판했다.

하헌형/성상훈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