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비하면 지옥도 아름다웠다.”

1527년 5월 로마를 휩쓴 재앙을 지켜본 한 기록자가 남긴 말이다. 로마 역사상 최악의 약탈로 평가되는 사건은 교황 클레멘스 7세의 ‘배신’에서 비롯됐고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한 카를 5세에 의해 자행됐다.

16세기 초 유럽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패권을 놓고 팽팽히 맞서던 상황. ‘황제파’였던 클레멘스 7세는 카를 5세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수아 1세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격분한 카를 5세는 에스파냐군과 독일 용병 등 2만여 명을 로마로 보냈다. 이들은 교황군 5000여 명을 간단히 물리치고 로마를 짓밟았다. 무자비한 학살과 강간, 학대, 폭력, 강탈, 파괴가 자행됐다. 1000여 년 전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의 알라리크, 동고트의 토틸라가 존중했던 성직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당 제단에서 수도승과 사제, 수녀들이 살해되거나 치욕을 당했다. 민간인 사상자만 4만 명이 넘었다.

그로부터 9년 뒤인 1536년 봄, 카를 5세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한다. 그의 첫 로마 방문이었다. 클레멘스 7세의 후임자 파울루스 3세는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로마의 웅장한 쇼를 보여주려 했다. 황제가 로마의 유물을 잘 볼 수 있도록 여러 성당과 가옥 수백 채를 부숴 전망을 새롭게 구성했다.

교황의 노력은 성공했다. 황제는 체류 기간을 늘리기까지 하며 로마를 즐겼다. 파괴 행위는 없었다. 영국 작가 매슈 닐은 저서 <로마, 약탈과 패배로 쓴 역사>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카를은 말을 타고 새로운 샤크라 거리를 따라가면서 고대 개선문과 이 행사를 위해 새로 지은 개선문을 통과할 때 특히 감명받았다. 카를은 몰랐을 테지만 그가 본 몇몇 유물은 그가 벌인 약탈로 채석작업이 중단됐기 때문에 그의 도움으로 보존된 셈이었다.”

매슈 닐은 ‘약탈’을 열쇳말로 도시 로마의 3000년 역사를 솜씨 있게 풀어낸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현대사학을 전공한 그는 역사소설 <영국 승객들>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코스트상을 받은 작가다.

로마가 수많은 침탈과 홍수, 화재, 지진, 전염병을 겪으면서도 많은 유물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것에 매료된 작가는 15년간 로마에 살면서 과거의 흔적을 품은 도시 구석구석을 알아가고 공부하며 이 책을 썼다.

저자는 로마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일곱 번의 약탈을 소환한다. 기원전 387년 갈리아인, 408년 서고트인, 537년 동고트인, 1084년 노르만군, 1527년 카를 5세의 황제군, 1849년 루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대군, 1943년 독일 나치 군대에 의한 로마 침탈이다. 당시 전투와 약탈의 현장, 비상사태 전후 시대상과 생활상을 한 편의 이야기처럼 촘촘하게 엮어내며 로마가 어떻게 오늘날의 모습이 됐는지 보여준다. 소설가다운 정교한 플롯과 세밀한 묘사,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인다.

저자는 “로마인은 재앙이 닥칠 때마다 끊임없이 떨쳐내고 새로운 세대의 위대한 기념물을 더하며 도시를 재건했다”며 “평화와 전쟁 모두 로마를 오늘날의 특별한 장소로 만들었다”고 결론짓는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