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차관 극비방일 '돌파구'·오늘 오전에야 '마침표'…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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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당국자 "아침만 해도 가능성 50대50"…미국의 日압박도 상당했던 듯
외교부 당국자, 종료 6시간 앞두고 日대사관에 연기 공한 전달 "오늘 출근할 때만 해도 50대 50이었습니다.
"
정부 고위당국자는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하루도 남겨두지 않은 22일 아침 협정의 종료와 연장 가능성을 반반으로 봤다.
비슷한 시간, 해당 업무에 관여하는 또 다른 정부 인사는 "실무급에서 계속 협의하겠지만 지금은 (결정을 돌리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이 지난 8월 22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해 종료를 결정한 지소미아의 운명은 그만큼 막판까지 불확실했다.
정부 안팎의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종료 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는 22일 오후 6시 양국이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를 공식 발표하기까지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전개됐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담은 공문을 전달한 것은 지난 8월 23일. 양측은 이후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다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밖에 없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는 별개'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팽팽히 대치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한일은 서울과 도쿄의 외교채널을 다각도로 가동하며 물밑 접촉을 이어왔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9월 20일 도쿄, 10월 16일 서울, 11월 15일 도쿄에서 연이어 국장급 협의에 나섰다.
비공식적으로는 여러 직급을 통해 일주일 걸러 한 차례씩 접촉이 이뤄졌다.
지난달 총리회담에 이어 양국 정상이 지난 4일 태국에서 13개월여 만에 마주 앉으면서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에 대한 공감대만큼은 확인됐다.
그 시기 지소미아를 한미일 삼각 안보의 축으로 인식하는 미국의 '지소미아 복원' 압박도 거세졌다.
본격적인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이달 초 극비리에 일본을 방문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오늘 한국과 일본이 발표한 합의의 골격이 일본 측에 전달됐는데 일본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서 '지소미아 유예'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 것도 이때를 전후한 시점이다.
이달 초 아시아를 순방한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가 지난 15일(현지시간) 한일 관계 질문에 해군 비유법을 들어 "오랫동안 뱃머리가 기울기만 하다가 솟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료 전날인 21일 오후까지도 과연 완전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측은 대외적으로 원칙론을 고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이날 심야 통화를 할 때만 해도 합의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한일 간의 물밑협의는 이날 오전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조세영 차관이 전화로 일본 측과 막판까지 치열한 '밀당'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일본과의 합의가 사실상 마무리되자 전날에 이어 이날 오후 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조건부 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후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심의관은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내용을 담은 공한을 주한일본대사관 측에 인편으로 전달하면서 '지소미아 종료' 상황을 면하게 됐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조정의 결과였다"고 평했다. 한편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미국의 압박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대외 메시지는 주로 한국을 향해 나왔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상당한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지소미아는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 것이기때문에 공개적인 메시지를 낼 수 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내정이기때문에 미국도 공개적으로 나서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막판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는 22∼23일 나고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일본을 찾았지만 지난 19일에 도착해 도쿄를 먼저 방문했다.
이 곳에서 일본 국무성 관계자들과 두루 접촉하며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외교부 당국자, 종료 6시간 앞두고 日대사관에 연기 공한 전달 "오늘 출근할 때만 해도 50대 50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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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고위당국자는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하루도 남겨두지 않은 22일 아침 협정의 종료와 연장 가능성을 반반으로 봤다.
비슷한 시간, 해당 업무에 관여하는 또 다른 정부 인사는 "실무급에서 계속 협의하겠지만 지금은 (결정을 돌리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국이 지난 8월 22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해 종료를 결정한 지소미아의 운명은 그만큼 막판까지 불확실했다.
정부 안팎의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종료 결정의 효력이 발생하는 22일 오후 6시 양국이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를 공식 발표하기까지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전개됐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담은 공문을 전달한 것은 지난 8월 23일. 양측은 이후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다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밖에 없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는 별개'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팽팽히 대치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한일은 서울과 도쿄의 외교채널을 다각도로 가동하며 물밑 접촉을 이어왔다.
김정한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9월 20일 도쿄, 10월 16일 서울, 11월 15일 도쿄에서 연이어 국장급 협의에 나섰다.
비공식적으로는 여러 직급을 통해 일주일 걸러 한 차례씩 접촉이 이뤄졌다.
지난달 총리회담에 이어 양국 정상이 지난 4일 태국에서 13개월여 만에 마주 앉으면서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에 대한 공감대만큼은 확인됐다.
그 시기 지소미아를 한미일 삼각 안보의 축으로 인식하는 미국의 '지소미아 복원' 압박도 거세졌다.
본격적인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이달 초 극비리에 일본을 방문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오늘 한국과 일본이 발표한 합의의 골격이 일본 측에 전달됐는데 일본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가에서 '지소미아 유예'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 것도 이때를 전후한 시점이다.
이달 초 아시아를 순방한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가 지난 15일(현지시간) 한일 관계 질문에 해군 비유법을 들어 "오랫동안 뱃머리가 기울기만 하다가 솟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료 전날인 21일 오후까지도 과연 완전한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양측은 대외적으로 원칙론을 고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이날 심야 통화를 할 때만 해도 합의 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한일 간의 물밑협의는 이날 오전까지도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조세영 차관이 전화로 일본 측과 막판까지 치열한 '밀당'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 일본과의 합의가 사실상 마무리되자 전날에 이어 이날 오후 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어 '조건부 유예' 결정을 내렸다.
이후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심의관은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내용을 담은 공한을 주한일본대사관 측에 인편으로 전달하면서 '지소미아 종료' 상황을 면하게 됐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조정의 결과였다"고 평했다. 한편 이런 결과가 나온 데는 미국의 압박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의 대외 메시지는 주로 한국을 향해 나왔지만, 일본에 대해서도 상당한 압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지소미아는 미국의 국익과 직결된 것이기때문에 공개적인 메시지를 낼 수 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내정이기때문에 미국도 공개적으로 나서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막판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오는 22∼23일 나고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일본을 찾았지만 지난 19일에 도착해 도쿄를 먼저 방문했다.
이 곳에서 일본 국무성 관계자들과 두루 접촉하며 모종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