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화학 업종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 제품 마진이 급격히 축소돼 4분기에 줄줄이 ‘어닝 쇼크’를 낼 우려가 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글로벌 주식투자자들의 돈을 빨아들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기업 아람코 상장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수급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0兆 아람코 상장 '쇼크'…엎친데 덮친 油·化
반등 기미 안 보이는 정유·화학주

최근 증시 반등에도 정유·화학 업종의 하락세는 심상치 않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가 올 들어 3.0% 오른 동안 KRX에너지화학지수는 10.4% 떨어졌다. 미·중 무역 합의 기대에 지난 9월 이후 코스피지수가 6.8% 반등하는 동안에도 정유·화학 업종은 3.5% 하락했다. SK이노베이션이 올해 15.32% 내린 것을 비롯해 LG화학(-13.26%), 롯데케미칼(-20.76%), 에쓰오일(-5.83%) 등이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론 공급과잉으로 제품 마진이 나빠지고 있는 점이 꼽힌다. 9월 배럴당 7.7달러까지 올랐던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생산비용을 뺀 금액)은 이달 들어 1.8달러로 뚝 떨어졌다. 올해 최저치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석유화학 제품 에틸렌과 원료 나프타와의 가격 차이인 에틸렌 스프레드도 이달 t당 233달러로 지난 3분기 평균(370달러)과 지난해 4분기(421달러)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정유와 화학 두 업종 모두 공급과잉 국면에 진입했다”며 “문제는 내년에도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흐름이 정유·화학 업종 실적 전망치에 아직 반영되지 않아 일각에선 4분기 대규모 어닝 쇼크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현재 2350억원으로 한 달 전(3013억원)보다 22.0% 줄었다. 손 연구원은 “증권가에선 내년 정유 업종의 이익이 올해보다 38.2%, 화학 업종은 25.6%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공급 과잉이 계속된다면 이 같은 이익 증가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람코 상장 후폭풍 우려

세계 정유·화학 업계 최강자인 사우디 아람코의 상장도 한국 정유·화학주에 상당한 후폭풍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증시에 상장하는 아람코의 기업가치는 1조7000억달러(약 2014조원)로 평가되고 있다. 기업공개(IPO) 때 매각하기로 한 지분 1.5%의 가치만 255억달러(약 30조원)에 이른다.

사우디아라비아 증시가 신흥시장(EM) 지수에 속한 까닭에 한국 증시도 영향권에 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스톡익스체인지(FTSE)는 아람코 상장 이후 5거래일 안에 주요 지수에 편입하기로 했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도 최대한 빨리 지수에 반영하겠다고 했다”며 “이들 지수 추종 자금이 한국 증시에서 이탈하면서 12월 중순부터 말까지 수급상 부담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은 FTSE에는 선진국으로 분류돼 있지만, 추종 자금이 더 큰 MSCI 지수 내에선 신흥시장에 속해 있다.

글로벌 펀드들이 업종 전체에 대한 투자규모는 유지한 채 업종 내 편입 종목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 한국 중국 대만 등의 정유·화학주가 아람코 상장에 큰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영호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글로벌 펀드들이 아람코를 담는 대신 한국 대만 중국의 정유·화학주 중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종목을 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며 “얼마나 돈이 빠져나갈지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지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근호/김보형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