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의 6300억 특허 조세 소송…정부 패소 땐 삼성 등 수조원 稅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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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전 체결한 韓·美 조세협약이 '발목'
법원, 1·2심은 MS 손 들어줘
전문가들 "법원 판결 문제 있다"
법원, 1·2심은 MS 손 들어줘
전문가들 "법원 판결 문제 있다"
한국에 불리하게 체결된 한·미 조세협약과 법원의 보수적인 법 해석 때문에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소송에서 우리 정부가 외국 기업에 패소할 위기에 처했다. 패소 확정 시 국내 기업에 수조원의 추가 세금 부담이 생길 우려도 커지고 있다.
24일 국세청에 따르면 대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동수원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 6340억원을 취소하라”고 제기한 소송을 지난달 말 특별3부에 배당하고 법리 검토를 시작했다. 법원은 1심(올 1월)과 2심(7월)에서 모두 국세청 전액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세법 전문가들은 “1, 2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만, 법조계는 대법원이 MS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1, 2심 “미등록 특허 사용료 과세 못 해”
이번 사건은 삼성전자가 2012~2015년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제조에 필요한 특허 사용 대가로 MS에 4조3600억원을 지급하고, 이에 대해 국세청이 법인세를 원천징수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때 삼성이 거래한 특허의 97%는 한국에 등록되지 않은 외국 특허였다. MS는 이를 빌미로 법인세를 돌려달라고 2017년 소송을 냈다.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사용료는 한국에 과세권이 없다는 주장이다.
MS가 소송을 제기할 당시 정부 안팎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과 함께 ‘이번에는 법원이 태도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소송 규모가 큰 만큼 ‘한국의 과세 권리 측면을 좀 더 고려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6340억원은 이전까지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건의 최고 소송액(700억원)은 물론 전체 조세소송 기록(5600억원)까지 뛰어넘는 수준이다. 법원이 ‘구글세’로 대표되는 최근 국제조세의 글로벌 트렌드를 의식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구글세에 담긴 핵심 이념은 ‘다국적 기업이 특허 등 무형 자산으로 거둔 이익에 대해 엄격히 과세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1, 2심 모두 MS 손을 들어줬다.
정부 “안 그래도 세수 부진한데”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안 그래도 세금 수입이 부진한데 6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토해내면 재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9월까지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보다 5조6000억원 줄었다. 법인세는 그나마 6500억원 늘었는데 MS 건에 걸린 세액이 이와 맞먹는다. 앞으로가 더 큰 일이다. 법원에서 진행 중인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건 26건까지 줄줄이 패소하고, 외국 기업의 소 제기가 더 늘어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013~2017년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올린 특허 수익은 23조5800억원, 이에 물린 세금은 3조5800억원에 달한다. 최악의 경우 3조원 넘는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소송의 파장이 국내 기업에까지 미칠 가능성도 있다. 기업이 법인세를 낼 때 특허사용료 같은 업무 관련 비용은 ‘손금 산입’이 인정돼 과세표준(세금 부과 대상 금액)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법원 논리대로면 삼성전자는 ‘사용할 수도 없는 특허에 대해 사용료를 지급한’ 셈이 된다. 한국조세연구포럼 관계자는 “패소 확정 시 특허사용료가 업무 무관 비용이 돼 세무당국이 과거 손금 산입을 취소하고 추가 과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MS 사건으로 삼성전자가 추가 납부해야 할 세금은 약 8500억원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이 전향적 판단 내놔야”
정부가 특허사용료 소송에 휘말리게 된 1차적인 이유는 1976년 체결한 한·미 조세협약에 있다. 한국은 미국 외 94개국과의 협약에선 특허 등 사용료를 ‘지급한 곳’에서 과세하도록 규정했다. 특허 등록 장소를 볼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미국과의 협약에선 특허를 사용한 장소에서 과세하도록 했다. ‘사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과세 장소가 달라질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법원은 ‘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유효하다’는 ‘속지주의’ 원칙과 ‘사용’을 결부시켜 “미등록 특허는 한국에서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비유하면 ‘레시피를 활용해 요리했으나 레시피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라는 다소 비상식적인 결론이다.
한국세법학회는 지난해 말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 대가에 대한 국내 원천소득 과세제도 개선방안’이란 보고서에서 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조세조약에도 특허의 ‘사용’이 등록을 전제로 한다는 규정이 없고 △속지주의는 특허 보호를 위해 마련된 개념이지 특허를 제조·생산에 사용할 때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법학회는 “미국에도 특허의 속지주의가 과세 장소를 판정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판결이 있다”고 강조했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획재정부가 미등록 특허 사용료 과세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돼도 과거 거래엔 소급 적용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재판을 통해 전향적인 판단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24일 국세청에 따르면 대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동수원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 6340억원을 취소하라”고 제기한 소송을 지난달 말 특별3부에 배당하고 법리 검토를 시작했다. 법원은 1심(올 1월)과 2심(7월)에서 모두 국세청 전액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세법 전문가들은 “1, 2심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지만, 법조계는 대법원이 MS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1, 2심 “미등록 특허 사용료 과세 못 해”
이번 사건은 삼성전자가 2012~2015년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제조에 필요한 특허 사용 대가로 MS에 4조3600억원을 지급하고, 이에 대해 국세청이 법인세를 원천징수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때 삼성이 거래한 특허의 97%는 한국에 등록되지 않은 외국 특허였다. MS는 이를 빌미로 법인세를 돌려달라고 2017년 소송을 냈다.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한 사용료는 한국에 과세권이 없다는 주장이다.
MS가 소송을 제기할 당시 정부 안팎에선 ‘올 것이 왔다’는 반응과 함께 ‘이번에는 법원이 태도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소송 규모가 큰 만큼 ‘한국의 과세 권리 측면을 좀 더 고려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6340억원은 이전까지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건의 최고 소송액(700억원)은 물론 전체 조세소송 기록(5600억원)까지 뛰어넘는 수준이다. 법원이 ‘구글세’로 대표되는 최근 국제조세의 글로벌 트렌드를 의식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구글세에 담긴 핵심 이념은 ‘다국적 기업이 특허 등 무형 자산으로 거둔 이익에 대해 엄격히 과세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1, 2심 모두 MS 손을 들어줬다.
정부 “안 그래도 세수 부진한데”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안 그래도 세금 수입이 부진한데 60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토해내면 재정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9월까지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보다 5조6000억원 줄었다. 법인세는 그나마 6500억원 늘었는데 MS 건에 걸린 세액이 이와 맞먹는다. 앞으로가 더 큰 일이다. 법원에서 진행 중인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건 26건까지 줄줄이 패소하고, 외국 기업의 소 제기가 더 늘어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013~2017년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올린 특허 수익은 23조5800억원, 이에 물린 세금은 3조5800억원에 달한다. 최악의 경우 3조원 넘는 세수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소송의 파장이 국내 기업에까지 미칠 가능성도 있다. 기업이 법인세를 낼 때 특허사용료 같은 업무 관련 비용은 ‘손금 산입’이 인정돼 과세표준(세금 부과 대상 금액)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법원 논리대로면 삼성전자는 ‘사용할 수도 없는 특허에 대해 사용료를 지급한’ 셈이 된다. 한국조세연구포럼 관계자는 “패소 확정 시 특허사용료가 업무 무관 비용이 돼 세무당국이 과거 손금 산입을 취소하고 추가 과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MS 사건으로 삼성전자가 추가 납부해야 할 세금은 약 8500억원으로 추정된다.
“대법원이 전향적 판단 내놔야”
정부가 특허사용료 소송에 휘말리게 된 1차적인 이유는 1976년 체결한 한·미 조세협약에 있다. 한국은 미국 외 94개국과의 협약에선 특허 등 사용료를 ‘지급한 곳’에서 과세하도록 규정했다. 특허 등록 장소를 볼 필요도 없이 한국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다. 그런데 미국과의 협약에선 특허를 사용한 장소에서 과세하도록 했다. ‘사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과세 장소가 달라질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법원은 ‘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유효하다’는 ‘속지주의’ 원칙과 ‘사용’을 결부시켜 “미등록 특허는 한국에서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불가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비유하면 ‘레시피를 활용해 요리했으나 레시피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라는 다소 비상식적인 결론이다.
한국세법학회는 지난해 말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 대가에 대한 국내 원천소득 과세제도 개선방안’이란 보고서에서 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 조세조약에도 특허의 ‘사용’이 등록을 전제로 한다는 규정이 없고 △속지주의는 특허 보호를 위해 마련된 개념이지 특허를 제조·생산에 사용할 때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법학회는 “미국에도 특허의 속지주의가 과세 장소를 판정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판결이 있다”고 강조했다.
오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획재정부가 미등록 특허 사용료 과세를 위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돼도 과거 거래엔 소급 적용할 수 없다”며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재판을 통해 전향적인 판단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