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저비용항공사(LCC)는 올 들어 악재가 쏟아지면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물동량이 감소한 데다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일본 여행 자제운동까지 겹치면서 수익성이 급감했다. 성수기로 꼽히는 지난 3분기에도 제주항공(-185억원), 진에어(-131억원) 등 LCC업계는 일제히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플라이강원(지난 22일 취항)을 포함한 신규 LCC 진입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 공급 과잉도 심화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선 국내 LCC업계가 구조조정을 통한 재편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의미있는 주가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미 이스타항공과 에어부산 등의 매각설이 나오는 등 구조조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 재편이 이뤄진다면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이 가장 혜택을 볼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럽 LCC에 쏠리는 눈

국내 LCC 구조조정과 관련해 증권업계에선 유럽 LCC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과잉 공급에 따른 운임 하락으로 지난해부터 항공사의 파산, 매각, 노선 감축 등이 이어지는 등 활발한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유럽 1위 LCC인 라이언에어는 시장 재편 과정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로 꼽힌다. 3분기 영업이익률을 32.9%까지 끌어올리는 등 실적 개선이 두드러지고 있다. 주가는 8월 중순 이후 60% 가까이 올랐다.

라이언에어는 198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설립한 유럽 최대 LCC로 꼽힌다. 더블린공항과 런던 스탠스테드공항 등을 중심으로 2100여 개 노선에 취항하고 있다. LCC의 원조인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성공을 모방하고 변형해 1990년대 이후 급성장했다.

유럽 내 최저 운임 정책을 고수해온 라이언에어도 지난해 말부터 실적 악화의 ‘먹구름’이 끼었다. 과잉 공급으로 인한 저운임과 유가 반등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올해 1분기까지 두 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게르마니아항공(독일), 와우항공(아이슬란드), 아드리아항공(슬로베니아) 등 경쟁업체 파산도 속출했다.

라이언에어는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여객 수 확대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출 비중의 약 34%를 차지하는 부가서비스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했다. 경쟁사 인수합병도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라이언에어는 경쟁사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원가 수준을 유지해 운임 경쟁에 따른 시장 재편을 촉진할 수 있다”며 “우선 탑승권과 선호좌석 지정 판매 등 고수익 부가서비스로 이익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라이언에어의 3분기 영업이익은 10억1300만유로(약 1조313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8.5% 늘었다.

국내시장도 재편 가능성

국내 LCC업계의 실적 개선은 단시간 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관측이다. 올 연말부터 내년까지 3개의 LCC가 추가되면서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다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조건부 연장’이 이뤄지면서 일본 여행객 수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국내 LCC 중 가장 많은 일본 노선을 보유한 제주항공은 25일 유가증권시장에서 1600원(6.85%) 오른 2만49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제주항공의 3분기 매출은 3666억원으로 4.9%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174억원을 기록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분기 영업손실은 304억원으로 적자폭을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수요 감소에 따른 탑승률 방어를 위해 단가를 크게 낮추면서 수익성이 떨어졌다”며 “일본 노선이 부진하고 대체 노선인 동남아시아 노선도 공급 과잉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기 실적보다 구조조정 등 시장 재편 과정에서 LCC 업체들의 주가 반등 동력이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적 부진에 빠진 이스타항공은 꾸준히 매각설이 나오는 데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나선 HDC현대산업개발이 에어부산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항공시장은 사실상 처음으로 구조조정 시기를 경험하게 되는 만큼 주가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며 “시장 재편 과정에서 운신의 폭이 가장 넓은 제주항공이 1위 지위를 확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기만 기자 m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