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31)] 동남아학을 진흥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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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동남아학이나 필리핀 관련 학과 또는 강좌가 개설될 가능성이 있는지요.” 이달 초 마닐라에서 열린 한·필리핀 수교 70주년 기념 특별 세미나에서 나온 질문이다.
필리핀은 1949년 아세안 국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6·25전쟁 때 7420명의 젊은이를 파병한 전통 우방이다. 지난 70년간의 우호협력 관계를 넘어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세미나인지라 정치·외교·경제 분야에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학술 교류·협력 세션에서는 협력 관계 발전을 위해 지적인 교류와 축적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양국 간 학술 교류·협력의 불균형에 대한 지적이 두드러졌다.
필리핀의 한국어 및 한국학 연구는 한류 등 한국에 대한 관심과 우리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최근 크게 진전되고 있다. 마닐라 소재 필리핀국립대만 하더라도 학부와 대학원 과정의 한국어 강좌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의 한국학연구센터와도 활발하게 교류한다. 2016년 설립된 ‘한국연구센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한국학을 진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아세안 지적 교류 '불균형'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동남아 연구는 어떤 수준인가. 현재 필리핀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한 곳뿐이다. 지난해 필리핀어 전공 졸업생은 단 2명뿐이고, 올해도 2명 안팎이라고 한다. 아세안 10개국으로 대상을 넓혀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의 동남아 관련 학과가 10개에 불과하다. 국립대학은 전무하다. 중국 관련 학과가 240개, 일본 관련 학과가 180개인 것에 비하면 불균형이 심각하다.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를 통해 정부는 신남방정책 성과와 향후 한·아세안 관계의 발전 가능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 문서인 한·아세안 공동 비전 성명과 한·아세안 공동 의장 성명은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신남방정책은 정책 추진 의지와 구체적인 사업 측면에서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세안 10개국을 직접 방문하면서 신남방정책을 이끌었다.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불과 3주 전 방콕에서 문 대통령과 회동했음에도 한국을 다시 찾아 양자회담과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여는 것 자체가 신남방정책에 대한 높은 평가를 보여준다. 일반 국민의 아세안과 신남방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진정 큰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얼마 전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진출 계획을 보도하던 국내 한 유력 방송사가 한·인도네시아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타결을 설명하면서 조코위 대통령이 아니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영상을 내보냈다. 인도네시아를 인도로 착각한 것이다. 이런 예는 많다. 한·인도네시아 철도협력 사업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행사 장소로 자카르타가 아니라 인도 수도인 뉴델리로 표기한 해프닝도 있었다. 어떤 이가 “난 발리는 가 봤는데 인도네시아는 아직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해 웃은 적도 있다.
우리가 아세안 국가들을 쉽게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아시아권 문화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는 우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세안의 특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다양성’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그 다양성은 혼합적이고 혼종적으로 나타나기에 더욱 복잡하다. 아세안과 100년, 200년을 함께할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려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올바른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남아 관련 교육과 동남아학의 발전을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를 보면 아세안에 대한 한국 유학 장학생 대폭 확대 및 한국학 지원 사업은 포함돼 있으나, 한국 내 동남아 전문가 육성과 동남아학 지원의 구체적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한국 내 동남아 전문가 키워야
첫째, 기존 동남아학 관련 학과 지원과 아울러 국립대학에도 동남아학 학과와 강좌를 개설해야 한다. 둘째, 한국 내 동남아 출신 학자와 유학생, 동남아의 한국인 학자와 유학생의 연구 성과를 포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다문화 가정 2세대 및 동남아의 한국 동포 2세대를 전문가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한·아세안 협력 증진에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정 지역과 분야에 대한 다층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도 필요하다. 포스코와 롯데케미칼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반튼주(州)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슬람과 지방 토호세력의 영향력이 유난히 강한 특성이 있다. 이런 특정지역 연구는 우리 기업의 진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동남아에 대한 교육 강화와 한국 내 동남아학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필리핀은 1949년 아세안 국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6·25전쟁 때 7420명의 젊은이를 파병한 전통 우방이다. 지난 70년간의 우호협력 관계를 넘어 새로운 협력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세미나인지라 정치·외교·경제 분야에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학술 교류·협력 세션에서는 협력 관계 발전을 위해 지적인 교류와 축적이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양국 간 학술 교류·협력의 불균형에 대한 지적이 두드러졌다.
필리핀의 한국어 및 한국학 연구는 한류 등 한국에 대한 관심과 우리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최근 크게 진전되고 있다. 마닐라 소재 필리핀국립대만 하더라도 학부와 대학원 과정의 한국어 강좌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여타 동남아시아 국가의 한국학연구센터와도 활발하게 교류한다. 2016년 설립된 ‘한국연구센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한국학을 진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아세안 지적 교류 '불균형'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동남아 연구는 어떤 수준인가. 현재 필리핀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한 곳뿐이다. 지난해 필리핀어 전공 졸업생은 단 2명뿐이고, 올해도 2명 안팎이라고 한다. 아세안 10개국으로 대상을 넓혀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의 동남아 관련 학과가 10개에 불과하다. 국립대학은 전무하다. 중국 관련 학과가 240개, 일본 관련 학과가 180개인 것에 비하면 불균형이 심각하다.
한·아세안 관계 수립 30주년을 기념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한·메콩 정상회의를 통해 정부는 신남방정책 성과와 향후 한·아세안 관계의 발전 가능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 문서인 한·아세안 공동 비전 성명과 한·아세안 공동 의장 성명은 이런 내용들을 담고 있다.
신남방정책은 정책 추진 의지와 구체적인 사업 측면에서 역대 어느 정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세안 10개국을 직접 방문하면서 신남방정책을 이끌었다.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이 불과 3주 전 방콕에서 문 대통령과 회동했음에도 한국을 다시 찾아 양자회담과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여는 것 자체가 신남방정책에 대한 높은 평가를 보여준다. 일반 국민의 아세안과 신남방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진정 큰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얼마 전 현대차의 인도네시아 진출 계획을 보도하던 국내 한 유력 방송사가 한·인도네시아 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타결을 설명하면서 조코위 대통령이 아니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영상을 내보냈다. 인도네시아를 인도로 착각한 것이다. 이런 예는 많다. 한·인도네시아 철도협력 사업을 홍보하는 포스터에 행사 장소로 자카르타가 아니라 인도 수도인 뉴델리로 표기한 해프닝도 있었다. 어떤 이가 “난 발리는 가 봤는데 인도네시아는 아직 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해 웃은 적도 있다.
우리가 아세안 국가들을 쉽게 인식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아시아권 문화를 공유하고, 경제적으로는 우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세안의 특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다양성’이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그 다양성은 혼합적이고 혼종적으로 나타나기에 더욱 복잡하다. 아세안과 100년, 200년을 함께할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키려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올바른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남아 관련 교육과 동남아학의 발전을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 이번 정상회의 결과를 보면 아세안에 대한 한국 유학 장학생 대폭 확대 및 한국학 지원 사업은 포함돼 있으나, 한국 내 동남아 전문가 육성과 동남아학 지원의 구체적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방안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한국 내 동남아 전문가 키워야
첫째, 기존 동남아학 관련 학과 지원과 아울러 국립대학에도 동남아학 학과와 강좌를 개설해야 한다. 둘째, 한국 내 동남아 출신 학자와 유학생, 동남아의 한국인 학자와 유학생의 연구 성과를 포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한국의 다문화 가정 2세대 및 동남아의 한국 동포 2세대를 전문가로 육성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넷째, 한·아세안 협력 증진에 바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특정 지역과 분야에 대한 다층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도 필요하다. 포스코와 롯데케미칼이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반튼주(州)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슬람과 지방 토호세력의 영향력이 유난히 강한 특성이 있다. 이런 특정지역 연구는 우리 기업의 진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동남아에 대한 교육 강화와 한국 내 동남아학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