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수합병(M&A) 무대에 큰 장이 섰다. 25일(미국 현지시간) 하루에만 다섯 건, 600억달러(약 70조5000억원) 규모의 M&A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합의에 대한 기대로 글로벌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M&A도 활발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세계 각국의 금리 인하 추세로 기업의 자금 조달 부담이 줄어든 것이 M&A가 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미국 1위 온라인 증권사 찰스슈와브는 2위 TD아메리트레이드를 26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두 회사의 고객을 합하면 2400만 명에 이르고, 보유 자산은 5조달러에 달한다. 월터 베팅거 찰스슈와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인수를 통해 장기적으로 투자 서비스 부문 등의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에만 600억弗 M&A '빅딜'…"글로벌 경기회복 신호탄 올랐다"
같은 날 프랑스 명품 패션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미국 보석업체 티파니를 162억달러에 인수했다. 명품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다. LVMH는 티파니 인수를 통해 보석 시장에서 까르띠에를 보유한 리치몬트그룹 등과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LVMH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보석 부문을 강화하고 미국 및 중국 시장을 공략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는 미국 바이오제약사 더메디신스컴퍼니를 97억달러에 인수하기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노바티스는 메디신스를 인수해 심장 치료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는 티켓사업 자회사인 스텁허브를 스위스 티켓 판매 업체 비아고고엔터테인먼트에 매각하기로 했다. 전액 현금 거래로 이뤄질 예정이며 매각가격은 40억달러 규모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일본 미쓰비시그룹이 이끄는 컨소시엄은 네덜란드 에너지기업 에네코를 45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 같은 글로벌 M&A 열기는 경기침체 우려가 수그러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경기침체의 신호로 읽히는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다. 신용평가사 S&P글로벌은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이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주식 시장이 활기를 띠고, 기업들이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것도 M&A가 활발한 이유로 꼽힌다. 루이지 드 베치 씨티그룹 유럽투자 담당은 “자금력을 갖춘 기업이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며 “신흥시장의 리스크는 커지는 데 비해 미국 시장은 활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M&A는 이달에만 1442억달러 규모를 기록했다. 지난 7월 이후 M&A 규모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기업들은 경쟁사를 견제하고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누 아이엔가 JP모간 북미 M&A담당은 “성장이 필요한 기업에 M&A는 핵심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추가 대형 M&A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찰스슈와브의 TD아메리트레이드 인수는 최근 온라인 거래 수수료 무료화로 경쟁이 치열한 미국 증권업계에서 비용 절감 등을 위한 M&A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미국 사무기기업체 제록스의 휴렛팩커드(HP) 인수 여부도 시장의 관심사다. 제록스는 앞서 HP에 335억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으나 HP 측이 거절하자 곧바로 적대적 M&A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제록스는 “두 회사가 우호적 합병에 합의하지 못하면 HP 일반 주주를 대상으로 주식 매집에 나설 수 있다”고 통보했다. 이에 HP 이사회는 이날 “제록스의 인수 제안은 우리의 가치를 크게 과소평가한 것”이라며 제안을 재차 거절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