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국민연금 주주권행사 가이드라인(지침) 강행을 두고 정부 안팎에서도 ‘속도 조절론’이 나오고 있다. 국회를 건너뛴 채 국민연금 지침으로 주주권행사를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법 개정에 준하는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복지부의 조급증은 지난 13일 국민연금과 함께 연 공청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 공청회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지난 7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지침 초안을 논의한 뒤 ‘적법한 절차’를 강조하면서 마련됐다. 하지만 복지부는 공청회 전날까지도 개최 사실을 숨기다가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고 나서야 부랴부랴 공개했다.

공청회 자체도 토론자 상당수가 정부에 친화적인 의견을 가진 인사들로 채워져 막힘없이 진행됐다. 공청회에 참석한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구색만 맞추기 위해 짜인 공청회였다”며 “기업 경영에 파급력이 큰 사안을 한두 시간 동안 몇 명 의견만 듣고 절차를 거쳤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 입김이 차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연금의 경영 참여를 확대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는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에 상근 전문위원직을 신설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민연금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이 안은 기금위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정부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요구는 외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준행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행사를 한다는 것 자체보다 시장이 기금위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국민연금의 권한 확대에 앞서 기금운용 체계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이 불필요한 갈등을 양산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처럼 시행령이나 지침을 통해 우회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면 오히려 국회나 기업의 저항으로 갈등비용이 커질 여지가 있다”며 “급하게 모든 것을 바꾸기보다 단계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