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제 1야당인 노동당이 내달 12일 열리는 조기총선을 앞두고 ‘반(反) 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였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사진)가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조직인 헤즈볼라 찬성 집회에 참석하는 등 친(親)팔레스타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의혹에서다.

영국 내 유대교 최고지도자인 에프라임 미르비스 랍비장은 26일(현지시간) 일간 더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유대인 사회에 대한 노동당 내 인종차별적인 행동에 대한 당의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동당은 더이상 다양성과 평등, 반인종차별주의 정당이라고 내세울 수 없다”며 “코빈 대표는 총리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동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유대인 사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우려스럽다는 것이 미르비스 랍비장의 주장이다.

영국에서 종교단체가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당을 비판하는 등 사실상 정치개입에 나선 건 매우 이례적이다. 영국의 유대인 사회는 코빈 대표를 대표적인 반유대주의 인사로 보고 있다. 코빈 대표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조직인 헤즈볼라 찬성 집회에 참석하는 등 뚜렷한 반이스라엘 성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2015년 코빈 대표가 노동당 새 당수로 취임했을 때 유대인 사회가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노동당은 이듬해인 2016년에도 무슬림 출신 한 의원이 반유대주의 글을 공유한 데 이어 켄 리빙스턴 전 런던시장이 아돌프 히틀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등 반유대주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당에 대한 유대인 사회의 지지율은 1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영국 내 유대인은 30만명에 달한다.

코빈 대표는 이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며, 당에 제기된 문제를 적절히 처리해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유대주의는 비도덕적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어떤 형태의 반유대주의도 영국이나 노동당 정부 하에서는 용인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코빈 대표는 노동당의 반유대주의 의혹에 대해 영국 내 유대인 사회에 사과하는 것은 거절했다. BBC는 이날 코빈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유대인 사회에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네 차례 했다. 코빈 대표는 사과를 거부했다.

총선에서 안정적 과반 의석을 얻기 위해 노동당과 경쟁하고 있는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재빨리 공격에 나섰다. 그는 “노동당의 반유대주의는 매우 심각하다”며 “이는 코빈 대표의 리더십 실패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당은 반무슬림(이슬람 교도) 논란을 빚고 있다. 영국 무슬림(이슬람교도) 평의회는 “보수당이 그동안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평의회는 “보수당이 이슬람포비아를 부인하고 묵살하거나 기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존슨 총리도 정계 입문 전 기자 재직 시절 이슬람 전통 의상인 부르카를 입은 여성을 ‘우체통, 은행 강도처럼 보인다’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