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진실을 알면 행동하는 게 지식인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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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고대 그리스 문명인 헬레니즘(Hellenism)은 기독교의 모태인 헤브라이즘(Hebraism)과 함께 서양철학의 양대 뿌리로 불린다. 그리스·로마 사상의 기원인 헬레니즘은 인본주의(人本主義), 그리스도교 사상인 헤브라이즘은 신본주의(神本主義)로 통칭된다. 헤브라이즘의 상징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에 비견되는 그리스 문명의 간판은 소크라테스다.
기원전 399년, 그리스 아테네의 한 법정에서 71세 노(老)철학자 소크라테스(BC 469~BC 399)가 법정에 섰다. “아테네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였다. 당시 아테네 재판은 1명의 재판장과 평결을 내리는 500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게 지혜
그의 제자 플라톤(BC 428~BC 348)이 저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The Apology of Socrates)>은 9시간30분간 진행된 이 재판에서 스승이 행한 약 3시간 동안의 변론을 정리한 책이다. 기소를 반박하는 최초 변론, 유죄선고 후 변론, 사형선고 후 변론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쓴 <크리톤(Kriton)>과 <파이돈(Phaidon)>을 같이 읽어야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권유한 친구 크리톤에게 탈옥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수치스럽게 살아남아 자신이 추구하는 참된 진리를 더럽히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 하나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플라톤의 책 어디에도 없다. <크리톤>의 맥락을 해석한 말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생애 마지막 순간, 추종자들과 함께 ‘영혼 불멸’을 주제로 나눈 대화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요지는 비교적 간단명료하다. “어느 날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神託)을 받았다.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싶어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스스로 아느냐였다. 그들의 무지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미움을 사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발을 당했다. 나의 행동은 신탁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는 변론을 통해 “너 자신을 알라”가 일깨우는 ‘무지(無知)의 지(知)’를 강조했다. 그는 일생 동안 ‘깨달음을 낳게 하는 산파(産婆)’를 자처했다. 시장과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대화했다.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그저 묻고 또 물었을 뿐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고, 이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진리를 알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이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게 지식인의 도리다.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고발 또한 거짓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과 같은 지자(知者)의 역할을 ‘말(馬)에 붙어 있는 등에(gadfly: 피를 빠는 곤충)’에 비유했다. “혈통은 좋으나 굼뜬 말과 같은 아테네에 붙어 끊임없이 일깨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신이 내린 소명(召命)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야 말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다. 오직 한 사람이나 극소수 전문가만이 말을 뛰어난 경주마로 키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는 철학적인 사변(思辨)이나 체제 등 현실 비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등에와 말’, ‘좋은 말 키우기’의 비유는 재판 성격과 소크라테스의 정치관을 엿보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평소 포퓰리즘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아테네의 중우정치(衆愚政治)를 혐오했다. 아테네를 몰락시킨 주범으로 민주정을 꼽았다. 쇠퇴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면 현명한 군주나 소수의 귀족에 의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당시 아테네 정치인들은 대중의 여론에 휘둘렸다.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소피스트(sophist)들은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훼손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선동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수 세력인 민주정 지지파와 소피스트들에겐 소크라테스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지식인은 말(馬)을 일깨우는 등에"
그를 기소한 사람들은 당시 거물 정치인 아니토스와 그의 측근 리콘, 두 사람의 사주를 받은 젊은 시인 멜레토스였다. 모두 열렬한 민주정 지지자였다. 이들이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드러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이것이었다. 소크라테스와 추종자들이 적국인 스파르타의 귀족정에 우호적이었다는 것도 이들의 반감을 키웠다. 중범죄 혐의도 아니었던 기소 내용으로 소크라테스가 사형이란 극형을 받게 된 이유가 설명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에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테네 신에 대한 불신과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기소 내용에 대한 변론만 담았기 때문이다. 재판 배경과 결과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중우정치의 폐단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지식인의 역할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는 오늘날, 무엇이 지식인의 사명인지를 되묻게 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기원전 399년, 그리스 아테네의 한 법정에서 71세 노(老)철학자 소크라테스(BC 469~BC 399)가 법정에 섰다. “아테네가 믿는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였다. 당시 아테네 재판은 1명의 재판장과 평결을 내리는 500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돼 있었다.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게 지혜
그의 제자 플라톤(BC 428~BC 348)이 저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The Apology of Socrates)>은 9시간30분간 진행된 이 재판에서 스승이 행한 약 3시간 동안의 변론을 정리한 책이다. 기소를 반박하는 최초 변론, 유죄선고 후 변론, 사형선고 후 변론 등 세 부분으로 나뉜다. 플라톤이 쓴 <크리톤(Kriton)>과 <파이돈(Phaidon)>을 같이 읽어야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가 탈옥을 권유한 친구 크리톤에게 탈옥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 내용이다. 수치스럽게 살아남아 자신이 추구하는 참된 진리를 더럽히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를 지키는 길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중 하나로 알려진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플라톤의 책 어디에도 없다. <크리톤>의 맥락을 해석한 말이다.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생애 마지막 순간, 추종자들과 함께 ‘영혼 불멸’을 주제로 나눈 대화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요지는 비교적 간단명료하다. “어느 날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神託)을 받았다.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는 소크라테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싶어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나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들과 나의 차이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스스로 아느냐였다. 그들의 무지가 드러나는 과정에서 미움을 사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발을 당했다. 나의 행동은 신탁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내가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는 변론을 통해 “너 자신을 알라”가 일깨우는 ‘무지(無知)의 지(知)’를 강조했다. 그는 일생 동안 ‘깨달음을 낳게 하는 산파(産婆)’를 자처했다. 시장과 거리를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 대화했다.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그저 묻고 또 물었을 뿐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고, 이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진리를 알면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이를 행동하고 실천하는 게 지식인의 도리다.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고발 또한 거짓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과 같은 지자(知者)의 역할을 ‘말(馬)에 붙어 있는 등에(gadfly: 피를 빠는 곤충)’에 비유했다. “혈통은 좋으나 굼뜬 말과 같은 아테네에 붙어 끊임없이 일깨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신이 내린 소명(召命)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야 말을 좋게 만드는 게 아니다. 오직 한 사람이나 극소수 전문가만이 말을 뛰어난 경주마로 키울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는 철학적인 사변(思辨)이나 체제 등 현실 비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등에와 말’, ‘좋은 말 키우기’의 비유는 재판 성격과 소크라테스의 정치관을 엿보게 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그는 평소 포퓰리즘과 선전·선동이 판을 치는 아테네의 중우정치(衆愚政治)를 혐오했다. 아테네를 몰락시킨 주범으로 민주정을 꼽았다. 쇠퇴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면 현명한 군주나 소수의 귀족에 의한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당시 아테네 정치인들은 대중의 여론에 휘둘렸다.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소피스트(sophist)들은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훼손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선동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수 세력인 민주정 지지파와 소피스트들에겐 소크라테스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지식인은 말(馬)을 일깨우는 등에"
그를 기소한 사람들은 당시 거물 정치인 아니토스와 그의 측근 리콘, 두 사람의 사주를 받은 젊은 시인 멜레토스였다. 모두 열렬한 민주정 지지자였다. 이들이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운 드러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이것이었다. 소크라테스와 추종자들이 적국인 스파르타의 귀족정에 우호적이었다는 것도 이들의 반감을 키웠다. 중범죄 혐의도 아니었던 기소 내용으로 소크라테스가 사형이란 극형을 받게 된 이유가 설명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크리톤>에 이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테네 신에 대한 불신과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기소 내용에 대한 변론만 담았기 때문이다. 재판 배경과 결과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지적한 중우정치의 폐단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지식인의 역할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포퓰리즘이 위세를 떨치는 오늘날, 무엇이 지식인의 사명인지를 되묻게 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