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63호분…2m 돌 7매 얹고 밀봉
지금까지 한 차례도 도굴되지 않아 원형이 보존된 약 1천500년 전 비화가야 지배자 무덤 내부가 28일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5세기 중반부터 후반 사이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63호분 뚜껑돌을 이날 들어 올린다.

봉토 지름이 21m, 높이가 7m인 63호분은 이보다 더 큰 지름 27.5m의 39호분에 인접했다.

39호분 봉토에 가려져 그동안 도굴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 있는 무덤 약 250기 가운데 도굴 흔적 없이 나타난 사례는 63호분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63호분은 길이가 2m에 이르는 넓적한 뚜껑돌 7개를 얹고, 사이를 깬돌로 메운 뒤 점질토를 발라 밀봉했다.

시신과 부장품을 두는 매장주체부는 조성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연구소는 소형 카메라로 내부를 조사해 토기들을 확인했다.
무덤은 점토를 다져 평탄화 작업을 하고 남서쪽에 큰 항아리인 대호(大壺)와 유개장경호(有蓋長頸壺·뚜껑이 있고 목이 긴 항아리)를 묻었다.

매장주체부는 작은 깬돌을 쌓아 네 벽을 만들었으며, 벽면에서는 점토를 바르고 주칠한 흔적이 나타났다.

규모는 길이 6.3m, 폭 1.4m, 깊이 1.9m다.

고분 남동쪽에는 길이 2.7m, 폭 0.6m, 깊이 0.8m인 소형 석곽묘(石槨墓·돌덧널무덤)를 뒀는데, 이 무덤도 길이 1m가량 판석 10∼11개를 놓고 점토로 감싸 마무리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63호분에 대해 "봉토 표면에 점토 덩어리를 바른 흔적이 온전히 남았고, 호석(護石·무덤 둘레에 쌓는 돌)이 노출돼 있다"며 "비화가야인 장송 의례와 고분 축조기술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했다.
사적 제514호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무덤을 조성했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이다.

연구소는 2014년부터 고분군 미정비 지역 학술발굴을 진행 중이다.

2016년 이후에는 동쪽 상단부에 있는 63호분과 39호분, 봉토 지름이 약 8m인 38호분과 62호분을 발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