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장사하던 칠갑산 청년, 스팀압력, 코팅살균 기술로 쌀 식품 강소기업 일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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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구 칠갑농산 회장
연매출 680억원 기업으로
단시간내 대량으로 찌는 증숙기
유통기한 확 늘린 기술도 개발
식품 관련 협회에 특허 기증도
연매출 680억원 기업으로
단시간내 대량으로 찌는 증숙기
유통기한 확 늘린 기술도 개발
식품 관련 협회에 특허 기증도
이능구 칠갑농산 회장(76)이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 서울로 올라온 건 1972년이다. 29세 때였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뇌막염에 걸린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족을 두고 홀로 상경했다.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는 친척 소개로 떡 공장에서 떡국용 쌀떡을 떼다 시내 곳곳의 상점과 정육점 등에 파는 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쌀 가공식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서울에 첫발을 디딘 지 47년이 지난 올해 연 매출 680여억원의 식품기업 회장이 돼 있다.
그가 1982년 창업한 칠갑농산은 국내 대표적인 쌀 가공식품 회사다. 떡국이나 떡볶이용 쌀떡부터 국수, 냉면, 수제비, 냉동만두, 즉석 쌀국수 등 칠갑농산이 생산하는 제품의 80%가량이 쌀을 주원료로 한다.
혼자 자전거에 쌀떡 봉지를 가득 싣고 서울 망원동, 서교동 일대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1970년대 중반의 기억을 떠올리는 걸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떡을 팔아보겠다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미 거래처가 있으니 나가라”고 문전박대당하던 시절이었다. “가게 주인들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 시간에 미리 가서 가게 앞을 깨끗하게 치워놓는 일을 며칠씩 계속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가게 주인들도 ‘알겠으니까 몇 봉지 놓고 가라’면서 마음을 열었고요.”
이런 식으로 5~6년 동안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며 납품처를 늘려나간 덕에 1980년대 초반 작은 점포와 1t 트럭도 하나 마련하게 됐다. 압구정동을 비롯한 서울 강남권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 단지 내 슈퍼마켓들을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넓힌 게 사업 안정화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그는 유통사업이 자리가 잡히자 쌀 가공식품 제조로 눈을 돌렸다. 칠갑농산이란 회사 창업도 그때 이뤄졌다. 이 회장의 남다른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생산 기계와 설비를 직접 설계해 공장의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경쟁업체보다 더 많은 물량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떡 공장들은 말이 공장이지 다들 동네 방앗간 수준이었어요. 시루에 쌀을 넣어 찌는 동안 사람이 계속 옆에 붙어서 지켜봐야만 했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사업을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고민 끝에 개발된 기계가 압력밥솥처럼 스팀 압력을 이용해 떡을 쪄내는 ‘스팀 압력 떡 증숙기’다. 칠갑농산의 충남 청양 공장과 경기 파주 공장에서 가동하고 있는 기계도 1980년대 중반 처음 개발된 떡 증숙기를 30여 년 동안 계속 개량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물에 불린 쌀을 넣으면 몇 분 만에 수십㎏의 떡이 나오는 떡 증숙기는 당시 식품업계에선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이 회장은 칠갑농산의 기계들이 오늘날과 같은 뛰어난 성능을 내기까지 남들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고 말했다. “성공한 기계보다 만드는 도중에 실패해서 갖다 버린 기계가 훨씬 더 많습니다.”
독특한 살균법인 주정침지법을 국내 처음 도입한 뒤 경쟁업체들도 이 기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를 식품 관련 협회에 기증한 일은 국내 쌀 가공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술은 술 원료인 주정으로 쌀 가공식품의 겉면을 코팅해 살균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회장이 1980년대 후반 이 기술을 개발한 뒤 그 이전까지 길어야 열흘에 불과했던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이 최대 5개월까지 늘어났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큰 고민거리가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일본 회사들이 주정을 활용해 유통기한을 3개월 이상 유지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기술을 개발한 뒤 국내 쌀 가공식품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특허를 협회에 기증했죠.”
이 회장은 국내 쌀 소비 감소와 관련해 쌀 가공식품의 국내 소비와 수출을 늘리는 게 국내 농가들이 안정적으로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돕고 한국 농촌의 쇠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칠갑농산의 수출액은 50억원에 달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는 수출이라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해외 시장에 도전해야 회사도 더 키울 수 있고 또 그게 우리나라 농촌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양=FARM 홍선표 기자
전문은 ☞ m.blog.naver.com/nong-up/221700149380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는 친척 소개로 떡 공장에서 떡국용 쌀떡을 떼다 시내 곳곳의 상점과 정육점 등에 파는 일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쌀 가공식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서울에 첫발을 디딘 지 47년이 지난 올해 연 매출 680여억원의 식품기업 회장이 돼 있다.
그가 1982년 창업한 칠갑농산은 국내 대표적인 쌀 가공식품 회사다. 떡국이나 떡볶이용 쌀떡부터 국수, 냉면, 수제비, 냉동만두, 즉석 쌀국수 등 칠갑농산이 생산하는 제품의 80%가량이 쌀을 주원료로 한다.
혼자 자전거에 쌀떡 봉지를 가득 싣고 서울 망원동, 서교동 일대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1970년대 중반의 기억을 떠올리는 걸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떡을 팔아보겠다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미 거래처가 있으니 나가라”고 문전박대당하던 시절이었다. “가게 주인들이 출근하기 전인 새벽 시간에 미리 가서 가게 앞을 깨끗하게 치워놓는 일을 며칠씩 계속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가게 주인들도 ‘알겠으니까 몇 봉지 놓고 가라’면서 마음을 열었고요.”
이런 식으로 5~6년 동안 서울 시내 곳곳을 누비며 납품처를 늘려나간 덕에 1980년대 초반 작은 점포와 1t 트럭도 하나 마련하게 됐다. 압구정동을 비롯한 서울 강남권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 단지 내 슈퍼마켓들을 찾아다니며 영업망을 넓힌 게 사업 안정화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그는 유통사업이 자리가 잡히자 쌀 가공식품 제조로 눈을 돌렸다. 칠갑농산이란 회사 창업도 그때 이뤄졌다. 이 회장의 남다른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생산 기계와 설비를 직접 설계해 공장의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경쟁업체보다 더 많은 물량을 더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떡 공장들은 말이 공장이지 다들 동네 방앗간 수준이었어요. 시루에 쌀을 넣어 찌는 동안 사람이 계속 옆에 붙어서 지켜봐야만 했죠. 이런 식으로 해서는 사업을 키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고민 끝에 개발된 기계가 압력밥솥처럼 스팀 압력을 이용해 떡을 쪄내는 ‘스팀 압력 떡 증숙기’다. 칠갑농산의 충남 청양 공장과 경기 파주 공장에서 가동하고 있는 기계도 1980년대 중반 처음 개발된 떡 증숙기를 30여 년 동안 계속 개량해서 만든 결과물이다.
물에 불린 쌀을 넣으면 몇 분 만에 수십㎏의 떡이 나오는 떡 증숙기는 당시 식품업계에선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이 회장은 칠갑농산의 기계들이 오늘날과 같은 뛰어난 성능을 내기까지 남들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실패가 있었다고 말했다. “성공한 기계보다 만드는 도중에 실패해서 갖다 버린 기계가 훨씬 더 많습니다.”
독특한 살균법인 주정침지법을 국내 처음 도입한 뒤 경쟁업체들도 이 기술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특허를 식품 관련 협회에 기증한 일은 국내 쌀 가공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이 기술은 술 원료인 주정으로 쌀 가공식품의 겉면을 코팅해 살균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 회장이 1980년대 후반 이 기술을 개발한 뒤 그 이전까지 길어야 열흘에 불과했던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이 최대 5개월까지 늘어났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가장 큰 고민거리가 쌀 가공식품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에 갔을 때 일본 회사들이 주정을 활용해 유통기한을 3개월 이상 유지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기술을 개발한 뒤 국내 쌀 가공식품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게 먼저라는 생각에 특허를 협회에 기증했죠.”
이 회장은 국내 쌀 소비 감소와 관련해 쌀 가공식품의 국내 소비와 수출을 늘리는 게 국내 농가들이 안정적으로 쌀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돕고 한국 농촌의 쇠퇴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칠갑농산의 수출액은 50억원에 달한다.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는 수출이라는 게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해외 시장에 도전해야 회사도 더 키울 수 있고 또 그게 우리나라 농촌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양=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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