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권오규 이사장 "재단활동으로 '문화예술 세례' 받아…청년 사회적 기업 육성 힘 쏟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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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규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IMF대리대사·정책실장·부총리
30년간 경제관료로 국가에 헌신
IMF대리대사·정책실장·부총리
30년간 경제관료로 국가에 헌신
경기고, 서울대 출신에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한 모범생.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에 부총리를 지낸 엘리트. 학창시절 작은 일탈을 저질러본 적이 없었고 오랜 관료생활에서 큰 좌절을 맛본 적도 없었다. 똑똑하고 잘났지만 재미없고 지루한 스타일은 아닐까. 괜한 걱정이었다.
권오규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67)을 그의 단골집이라는 서울 소공동 크리스탈제이드에서 만났다. 마주 앉은 그는 ‘춤바람’ 난 20년차 아마추어 댄서였고 차분한 어조의 달변가였다. 하지만 정치 얘기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한다”며 선을 그었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 영역이 아니다”며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반면 춤 얘기엔 눈을 빛냈다. 재단의 활동을 설명할 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릴 적 꿈은 우주과학자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한 권 이사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베이징덕(오리구이 요리)을 주문했다. 그는 “즐겨 먹는 베이징덕을 잘하는 곳이어서 자주 들른다”며 “특히 밀가루 전병을 얇게 잘 만든다”고 소개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등장한 오리 껍질엔 진한 갈색의 윤기가 흘렀다. 권 이사장은 전병을 펴고 바싹하게 구운 껍질 위에 소스를 듬뿍 찍은 파를 올려 말았다. “전병은 얇고, 오리 껍질은 바삭하면서 소스의 맛이 깊어야 진짜 베이징덕 맛집”이라며 한 입 베어 문 그의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권 이사장은 아버지의 직장이 서울로 발령나면서 네 살 때 상경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의 장래 희망은 우주항공과학자였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이후 미국과 벌인 치열한 우주 기술 경쟁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때도 당연히 이과를 택했다. 권 이사장은 “당시엔 예비고사 수석, 경기고 수석 졸업, 서울대 수석 입학을 ‘3관왕’이라 했다”며 “한 해 선배였던 3관왕 임지순 포스텍 석학교수와 동기인 3관왕 오세정 서울대 총장도 물리학과로 진학했다”고 말했다.
추억을 되짚는 사이 상큼한 고수를 곁들인 블랙빈 돼지갈비와 달콤한 소스를 얹은 아몬드 크림새우가 차례로 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교자와 부추교자도 하나씩 맛본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큰 역할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를 두고 고민하던 중 정부 관료의 길을 권한 집안 어른의 조언에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고 한 회사에 매여 있는 게 싫었던 그는 솔깃했다. 공직은 국가와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매력으로 여겼다. 권 이사장은 “경제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처방을 찾는 학문”이라며 “단 한 번도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행정고시를 1년 정도 준비해 대학 3학년 때 1, 2, 3차 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다.
이후 경제 관료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재정경제원 소속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대리대사로 가 한국을 대표해 협상을 벌였다. 돌아와서는 재경부 요직인 경제정책국장을 맡았다. 그는 “한라, 대우, 현대그룹 등 외환위기 당시 중요한 구조조정은 모두 내 책상 위에서 이뤄졌다”고 회상했다. 재경부 차관보, 조달청장 등을 지낸 뒤 200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파견을 나갔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수석실 수석비서관으로 복귀했고 2개월도 안 돼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으로 고속 승진했다. 권 이사장이 부총리로 재임할 때 투자은행(IB) 탄생의 기반이 된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하고 시행했다. 그는 “법무부, 검찰, 대법원과 다퉈가면서 회사정리법 한 개 조항을 바꾸는 데 1년이 걸렸다”며 “그렇게 어렵던 것이 이후엔 노하우가 생겨 통합도산법을 만들 땐 1년도 안 돼 전체를 다 고쳤다”고 말했다.
치열했던 당시의 경험은 그가 2008년부터 교편을 잡고 있는 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하는 기반이 됐다. “투자은행과 기업 구조조정 등을 가르치면서 케이스 스터디를 많이 합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고 하면 어떻게 진행됐을 것이란 게 머릿속에 다 그려져요. 현대중공업이 한라중공업을 인수해갈 때의 과정을 꿰고 있으니까요.”
소외계층 돕는 재단 활동에 보람
30년 넘게 관료로 살아오면서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일은 이전과 많이 다른 활동이다. 권 이사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단에 와서 문화예술이라는 세례를 받은 셈”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단기적이었고 효율성이 기준이었죠. 호흡이 길고 감정에 호소하는 일은 자주 다뤄보지 못했어요. 재단에서는 사람들이 삶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문화예술의 향유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의 예산에서 크게 배려받지 못하는 어려운 계층에 민간 차원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재단으로 사회에 봉사할 기회라고 여겨 지난해 이사장직을 맡았다. ‘어려운 이들이 꿈과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재단 출연자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뜻에 맞게 실력뿐 아니라 가정 형편을 고려해 장학생을 선발하고 지원을 결정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교육 지원도 서울보다 농산어촌 산골마을을 우선하고 지역 문화 진흥 등에도 신경 쓰고 있다. 2012년부터 이어온 ‘온드림스쿨’은 전국 농산어촌 학교로 직접 찾아가 다양한 수업을 한다.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클래식 공연도 연다. 강원 평창과 전북 남원에서 매년 벌이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권 이사장은 지난 8월 강원 평창 방림면 계촌마을에서 열린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를 직접 찾았다. 그는 “계촌초등학교 전교생 31명, 계촌중학교 전교생 20명이 악기를 연주한다”며 “이 아이들로 구성된 51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고기를 나눠 주는 게 아니라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정 회장의 뜻”이라며 “재단이 하나의 플랫폼이 돼 스스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 발굴과 육성을 돕는 ‘H-온드림 사회적 기업 창업오디션’도 하고 있다. 지난 8년간 오디션을 통해 사회적 기업 251곳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1420개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재단은 경영 멘토링, 구매 연결, 협력사업 등으로 지원하고 있다. 권 이사장은 “젊은이들이 내놓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신기하고 놀랍다”며 “기업공개(IPO)를 한 곳도 있을 만큼 시장에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춤추며 문화예술의 힘 실감
그가 요즘 재단 일만큼 열정을 쏟는 것은 춤이다. 스포츠댄스를 취미로 즐긴 지는 20년이 됐다. 미국 워싱턴DC에서 근무할 때 한 은혼식 파티에서 만난 부부가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추는 춤에 반해버렸다. 아내에게 “한국에 가면 꼭 배워보자”고 했다. 1999년 12월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스포츠댄스를 배우며 ‘댄스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댄스클럽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연습하고 실력을 쌓았다. 요즘도 1주일에 네 번은 댄스클럽 연습실을 찾는다. 모던, 라틴, 아르헨티나 탱고까지 섭렵했다. 권 이사장은 “춤만 춰도 운동량이 엄청 많아 다른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며 “클럽 회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발표회도 열면서 춤을 생활의 활력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춤을 즐기면서 문화예술이 선사하는 힘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하는 재단의 활동에 더 큰 보람을 느끼는 이유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문화예술입니다. 삶의 여유가 없을수록 생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은 외면하게 되죠. 문화예술을 얼마나 향유하느냐가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입니다. 그 질을 고루 높여가는 데 기여하는 게 재단의 할 일입니다.”
■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2007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사재 8500여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분들을 돌아보고 희망의 사다리를 든든하게 만들어달라”는 정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 진흥과 미래인재 양성, 소외계층 지원 등 세 가지 분야에 걸쳐 지난 10년간 사회공헌 사업에 1595억원을 집행했다. 분야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수혜자 수는 64만 명에 이른다.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고 지난해 교육기부 우수기관 인증을 획득했다.
■ 권오규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약력
△1952년 강원 강릉 출생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석사
△1998년 중앙대 경제학 박사
△2004~2006년 OECD 대표부 대사
△2006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2006~2008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008년~ KAIST 초빙교수
△2018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 권오규 이사장의 단골집 크리스탈제이드
한약재로 맛낸 베이징덕…4년 연속 미쉐린 선정
크리스탈제이드는 광둥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식당이다. 1991년 싱가포르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 22개 도시에 100곳이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본사의 평가를 통과한 수석주방장들이 전 세계 매장에 파견된다.
서울 소공동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있는 크리스탈제이드 소공점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미쉐린 서울 추천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한약재를 사용해 잡냄새를 없애고 여러 번 반복해 구워낸 베이징덕(북경오리)이 대표 메뉴다. 껍질을 바삭하고 담백하게 굽고 크리스탈제이드의 특제 소스가 속살까지 잘 배도록 이틀간 숙성해 만든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깔끔한 딤섬과 흑후추 마늘 소고기 안심도 인기 메뉴다. 당일 조달한 신선한 재료로 정해진 양만 요리해서 판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권오규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67)을 그의 단골집이라는 서울 소공동 크리스탈제이드에서 만났다. 마주 앉은 그는 ‘춤바람’ 난 20년차 아마추어 댄서였고 차분한 어조의 달변가였다. 하지만 정치 얘기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한다”며 선을 그었다.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 영역이 아니다”며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반면 춤 얘기엔 눈을 빛냈다. 재단의 활동을 설명할 땐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릴 적 꿈은 우주과학자
약속 시간보다 5분 일찍 도착한 권 이사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베이징덕(오리구이 요리)을 주문했다. 그는 “즐겨 먹는 베이징덕을 잘하는 곳이어서 자주 들른다”며 “특히 밀가루 전병을 얇게 잘 만든다”고 소개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등장한 오리 껍질엔 진한 갈색의 윤기가 흘렀다. 권 이사장은 전병을 펴고 바싹하게 구운 껍질 위에 소스를 듬뿍 찍은 파를 올려 말았다. “전병은 얇고, 오리 껍질은 바삭하면서 소스의 맛이 깊어야 진짜 베이징덕 맛집”이라며 한 입 베어 문 그의 입가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강원 강릉에서 태어난 권 이사장은 아버지의 직장이 서울로 발령나면서 네 살 때 상경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의 장래 희망은 우주항공과학자였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이후 미국과 벌인 치열한 우주 기술 경쟁을 보면서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 때도 당연히 이과를 택했다. 권 이사장은 “당시엔 예비고사 수석, 경기고 수석 졸업, 서울대 수석 입학을 ‘3관왕’이라 했다”며 “한 해 선배였던 3관왕 임지순 포스텍 석학교수와 동기인 3관왕 오세정 서울대 총장도 물리학과로 진학했다”고 말했다.
추억을 되짚는 사이 상큼한 고수를 곁들인 블랙빈 돼지갈비와 달콤한 소스를 얹은 아몬드 크림새우가 차례로 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우교자와 부추교자도 하나씩 맛본 뒤 이야기를 이어갔다. 금융·기업 구조조정에 큰 역할
물리학과와 전자공학과를 두고 고민하던 중 정부 관료의 길을 권한 집안 어른의 조언에 경제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따르고 한 회사에 매여 있는 게 싫었던 그는 솔깃했다. 공직은 국가와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을 매력으로 여겼다. 권 이사장은 “경제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처방을 찾는 학문”이라며 “단 한 번도 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행정고시를 1년 정도 준비해 대학 3학년 때 1, 2, 3차 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다.
이후 경제 관료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1997년 재정경제원 소속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대리대사로 가 한국을 대표해 협상을 벌였다. 돌아와서는 재경부 요직인 경제정책국장을 맡았다. 그는 “한라, 대우, 현대그룹 등 외환위기 당시 중요한 구조조정은 모두 내 책상 위에서 이뤄졌다”고 회상했다. 재경부 차관보, 조달청장 등을 지낸 뒤 200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파견을 나갔다.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정책수석실 수석비서관으로 복귀했고 2개월도 안 돼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으로 고속 승진했다. 권 이사장이 부총리로 재임할 때 투자은행(IB) 탄생의 기반이 된 자본시장통합법을 제정하고 시행했다. 그는 “법무부, 검찰, 대법원과 다퉈가면서 회사정리법 한 개 조항을 바꾸는 데 1년이 걸렸다”며 “그렇게 어렵던 것이 이후엔 노하우가 생겨 통합도산법을 만들 땐 1년도 안 돼 전체를 다 고쳤다”고 말했다.
치열했던 당시의 경험은 그가 2008년부터 교편을 잡고 있는 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서 ‘살아있는 교육’을 하는 기반이 됐다. “투자은행과 기업 구조조정 등을 가르치면서 케이스 스터디를 많이 합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고 하면 어떻게 진행됐을 것이란 게 머릿속에 다 그려져요. 현대중공업이 한라중공업을 인수해갈 때의 과정을 꿰고 있으니까요.”
소외계층 돕는 재단 활동에 보람
30년 넘게 관료로 살아오면서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일은 이전과 많이 다른 활동이다. 권 이사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재단에 와서 문화예술이라는 세례를 받은 셈”이라고 표현했다.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는 대부분의 의사결정이 단기적이었고 효율성이 기준이었죠. 호흡이 길고 감정에 호소하는 일은 자주 다뤄보지 못했어요. 재단에서는 사람들이 삶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문화예술의 향유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부의 예산에서 크게 배려받지 못하는 어려운 계층에 민간 차원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주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재단으로 사회에 봉사할 기회라고 여겨 지난해 이사장직을 맡았다. ‘어려운 이들이 꿈과 희망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는 재단 출연자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뜻에 맞게 실력뿐 아니라 가정 형편을 고려해 장학생을 선발하고 지원을 결정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교육 지원도 서울보다 농산어촌 산골마을을 우선하고 지역 문화 진흥 등에도 신경 쓰고 있다. 2012년부터 이어온 ‘온드림스쿨’은 전국 농산어촌 학교로 직접 찾아가 다양한 수업을 한다.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클래식 공연도 연다. 강원 평창과 전북 남원에서 매년 벌이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가 대표적 사례다. 권 이사장은 지난 8월 강원 평창 방림면 계촌마을에서 열린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를 직접 찾았다. 그는 “계촌초등학교 전교생 31명, 계촌중학교 전교생 20명이 악기를 연주한다”며 “이 아이들로 구성된 51명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고기를 나눠 주는 게 아니라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정 회장의 뜻”이라며 “재단이 하나의 플랫폼이 돼 스스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재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청년 사회적 기업가 발굴과 육성을 돕는 ‘H-온드림 사회적 기업 창업오디션’도 하고 있다. 지난 8년간 오디션을 통해 사회적 기업 251곳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1420개의 일자리도 창출했다. 재단은 경영 멘토링, 구매 연결, 협력사업 등으로 지원하고 있다. 권 이사장은 “젊은이들이 내놓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신기하고 놀랍다”며 “기업공개(IPO)를 한 곳도 있을 만큼 시장에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춤추며 문화예술의 힘 실감
그가 요즘 재단 일만큼 열정을 쏟는 것은 춤이다. 스포츠댄스를 취미로 즐긴 지는 20년이 됐다. 미국 워싱턴DC에서 근무할 때 한 은혼식 파티에서 만난 부부가 음악에 맞춰 즉석에서 추는 춤에 반해버렸다. 아내에게 “한국에 가면 꼭 배워보자”고 했다. 1999년 12월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스포츠댄스를 배우며 ‘댄스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댄스클럽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꾸준히 연습하고 실력을 쌓았다. 요즘도 1주일에 네 번은 댄스클럽 연습실을 찾는다. 모던, 라틴, 아르헨티나 탱고까지 섭렵했다. 권 이사장은 “춤만 춰도 운동량이 엄청 많아 다른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며 “클럽 회원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발표회도 열면서 춤을 생활의 활력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춤을 즐기면서 문화예술이 선사하는 힘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 사업을 하는 재단의 활동에 더 큰 보람을 느끼는 이유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문화예술입니다. 삶의 여유가 없을수록 생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은 외면하게 되죠. 문화예술을 얼마나 향유하느냐가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입니다. 그 질을 고루 높여가는 데 기여하는 게 재단의 할 일입니다.”
■ 현대차 정몽구 재단은
2007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사재 8500여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이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분들을 돌아보고 희망의 사다리를 든든하게 만들어달라”는 정 회장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 진흥과 미래인재 양성, 소외계층 지원 등 세 가지 분야에 걸쳐 지난 10년간 사회공헌 사업에 1595억원을 집행했다. 분야별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의 수혜자 수는 64만 명에 이른다.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고 지난해 교육기부 우수기관 인증을 획득했다.
■ 권오규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약력
△1952년 강원 강릉 출생
△1971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석사
△1998년 중앙대 경제학 박사
△2004~2006년 OECD 대표부 대사
△2006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2006~2008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008년~ KAIST 초빙교수
△2018년~ 현대차 정몽구 재단 이사장 ■ 권오규 이사장의 단골집 크리스탈제이드
한약재로 맛낸 베이징덕…4년 연속 미쉐린 선정
크리스탈제이드는 광둥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식당이다. 1991년 싱가포르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 22개 도시에 100곳이 넘는 매장을 보유하고 있다. 싱가포르 본사의 평가를 통과한 수석주방장들이 전 세계 매장에 파견된다.
서울 소공동 을지로입구역 인근에 있는 크리스탈제이드 소공점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미쉐린 서울 추천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한약재를 사용해 잡냄새를 없애고 여러 번 반복해 구워낸 베이징덕(북경오리)이 대표 메뉴다. 껍질을 바삭하고 담백하게 굽고 크리스탈제이드의 특제 소스가 속살까지 잘 배도록 이틀간 숙성해 만든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깔끔한 딤섬과 흑후추 마늘 소고기 안심도 인기 메뉴다. 당일 조달한 신선한 재료로 정해진 양만 요리해서 판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