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도심 출몰 급증…사살·로드킬에 아프리카돼지열병까지 '멧돼지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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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왁자지껄
지난 23일 새벽 충북 청주시 주중동의 한 교차로에 새끼 멧돼지 네 마리가 나타났다. 방황하던 한 마리는 달려오던 자동차에 치여 죽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신고를 받고 온 유해조수포획단에 사살됐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어 지난 25~26일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에서 발견된 멧돼지 세 마리의 폐사체에서 2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전국에서 29번째였다. 정부는 접경지역의 멧돼지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21일 파주~철원간 광역울타리를 설치해 멧돼지 총기포획을 시작했다.
올 들어 전례없는 ‘멧돼지 수난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돼지 치사율이 100%인 전염병이 발생하자 정부는 멧돼지를 ‘감염 매개체’로 지목해 대규모 포획에 나섰고, 먹을 게 없어 도시로 내려온 멧돼지들은 ‘로드킬’을 당하거나 사살되고 있다. ◆‘멧돼지 포획’ 119 출동 전년 2배
멧돼지는 보통 가을과 초겨울(9~11월)에 도심에 가장 많이 출몰한다. 멧돼지는 호랑이 등 야생에서 천적이 없어진 탓에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짝짓기 시기를 맞아 수컷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동시에 영역다툼이 심해 쫓겨나는 개체들이 생긴다. 겨울철을 앞두고 먹이를 구하는 어미와 새끼 멧돼지들은 음식물 쓰레기 등의 냄새를 맡고 도심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올 들어 멧돼지의 도시 출몰이 유독 잦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 동안 전국의 멧돼지 포획 119 출동 건수는 438건으로 지난해(202건)의 2배를 넘었다. 올 들어 9월까지 총 257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34건)보다 26.7%, 2017년(2416건)보다 17.9% 증가했다.
특히 서울에서 멧돼지 출몰이 크게 늘었다. 지난 8일 밤 서울 강동구 일대 도로에서는 새끼 멧돼지 3마리가 잇따라 ‘로드킬’을 당했다. 지난 14일에는 한강에서 헤엄치던 새끼 멧돼지가 사살되기도 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멧돼지 포획 119 출동 건수는 422건으로 전년 동기(300건) 대비 40.7% 증가했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대학원 교수는 “서울은 멧돼지를 총기로 잡을 수 있는 수렵장이 없는 데다 교외 농가의 농작물과 도심의 음식물쓰레기 등 유혹 요인이 많아 멧돼지들이 모여드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올해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잦은 이유로 전문 수렵인의 감소로 인한 개체 수 증가, 도토리 등 먹이 부족 등 여러 원인이 꼽힌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은 “멧돼지는 연 평균 3.3마리씩 증가하는 ‘3.3배수 동물’이고, 상위 포식자가 없어 인간이 수렵하지 않으면 개체 수 조절이 불가능한데 2015년 경기 화성시 등에서 수렵인 총기사건이 발생한 후 총기 규제가 강화되며 엽사가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렵장 등 현장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살펴보면 지난해에 비해 개체 수가 1.5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야생생물관리협회에 따르면 수렵장을 신청한 엽사 수는 지난해 8907명에서 올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기 전 4745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멧돼지의 주요 먹이인 도토리가 올해 유독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우신 교수는 “멧돼지의 주요 먹이인 도토리는 한 해 걸러 많이 열렸다가 적게 열리는 ‘해거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미국에서는 도토리가 충분하지 못할 때 멧돼지의 행동범위가 3배까지 확장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보름간 9000마리 포획했지만 “전염병 못막아”
지난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자 정부는 대대적인 멧돼지 포획에 나섰다. 야생에서 이동하는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잡힌 멧돼지는 6만597마리로 지난해 연간 포획량(5만412마리)을 이미 넘었다. 국방부와 환경부가 남방한계선(GOP)과 민통선 구간 내 포획조치를 시작한 지난달 15일부터 31일까지 잡힌 멧돼지만 9135마리다. 환경부는 지난 5일 멧돼지 방역을 위해 363억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했다.
일각에선 대규모 멧돼지 포획 조치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인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총기로 사살하는 등 적극적인 포획 작전이야말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조치”라며 “멧돼지가 흘린 피와 수렵인의 신발, 옷, 장비와 자동차 등에 묻은 바이러스는 간접전파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폴란드의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멧돼지 이동성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었다”며 “모계 중심으로 무리지어 생활하는 멧돼지들은 무리 간 교류가 적고, 침 등 분비물 내 바이러스는 오래 잔존하지 못하며, 단기간 내 치사율이 90~100%인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영 동물은 멀리 이동하지 못하고 사망한다”고 밝혔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이어 지난 25~26일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에서 발견된 멧돼지 세 마리의 폐사체에서 27일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전국에서 29번째였다. 정부는 접경지역의 멧돼지 이동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21일 파주~철원간 광역울타리를 설치해 멧돼지 총기포획을 시작했다.
올 들어 전례없는 ‘멧돼지 수난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돼지 치사율이 100%인 전염병이 발생하자 정부는 멧돼지를 ‘감염 매개체’로 지목해 대규모 포획에 나섰고, 먹을 게 없어 도시로 내려온 멧돼지들은 ‘로드킬’을 당하거나 사살되고 있다. ◆‘멧돼지 포획’ 119 출동 전년 2배
멧돼지는 보통 가을과 초겨울(9~11월)에 도심에 가장 많이 출몰한다. 멧돼지는 호랑이 등 야생에서 천적이 없어진 탓에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는데 짝짓기 시기를 맞아 수컷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는 동시에 영역다툼이 심해 쫓겨나는 개체들이 생긴다. 겨울철을 앞두고 먹이를 구하는 어미와 새끼 멧돼지들은 음식물 쓰레기 등의 냄새를 맡고 도심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올 들어 멧돼지의 도시 출몰이 유독 잦았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9월 한 달 동안 전국의 멧돼지 포획 119 출동 건수는 438건으로 지난해(202건)의 2배를 넘었다. 올 들어 9월까지 총 257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34건)보다 26.7%, 2017년(2416건)보다 17.9% 증가했다.
특히 서울에서 멧돼지 출몰이 크게 늘었다. 지난 8일 밤 서울 강동구 일대 도로에서는 새끼 멧돼지 3마리가 잇따라 ‘로드킬’을 당했다. 지난 14일에는 한강에서 헤엄치던 새끼 멧돼지가 사살되기도 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멧돼지 포획 119 출동 건수는 422건으로 전년 동기(300건) 대비 40.7% 증가했다. 이우신 서울대 산림대학원 교수는 “서울은 멧돼지를 총기로 잡을 수 있는 수렵장이 없는 데다 교외 농가의 농작물과 도심의 음식물쓰레기 등 유혹 요인이 많아 멧돼지들이 모여드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올해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잦은 이유로 전문 수렵인의 감소로 인한 개체 수 증가, 도토리 등 먹이 부족 등 여러 원인이 꼽힌다. 김철훈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은 “멧돼지는 연 평균 3.3마리씩 증가하는 ‘3.3배수 동물’이고, 상위 포식자가 없어 인간이 수렵하지 않으면 개체 수 조절이 불가능한데 2015년 경기 화성시 등에서 수렵인 총기사건이 발생한 후 총기 규제가 강화되며 엽사가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렵장 등 현장에서 멧돼지의 흔적을 살펴보면 지난해에 비해 개체 수가 1.5배 수준으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야생생물관리협회에 따르면 수렵장을 신청한 엽사 수는 지난해 8907명에서 올해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기 전 4745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멧돼지의 주요 먹이인 도토리가 올해 유독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우신 교수는 “멧돼지의 주요 먹이인 도토리는 한 해 걸러 많이 열렸다가 적게 열리는 ‘해거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미국에서는 도토리가 충분하지 못할 때 멧돼지의 행동범위가 3배까지 확장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보름간 9000마리 포획했지만 “전염병 못막아”
지난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하자 정부는 대대적인 멧돼지 포획에 나섰다. 야생에서 이동하는 멧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확산시키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잡힌 멧돼지는 6만597마리로 지난해 연간 포획량(5만412마리)을 이미 넘었다. 국방부와 환경부가 남방한계선(GOP)과 민통선 구간 내 포획조치를 시작한 지난달 15일부터 31일까지 잡힌 멧돼지만 9135마리다. 환경부는 지난 5일 멧돼지 방역을 위해 363억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했다.
일각에선 대규모 멧돼지 포획 조치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물인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지난달 성명서를 내고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총기로 사살하는 등 적극적인 포획 작전이야말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한 조치”라며 “멧돼지가 흘린 피와 수렵인의 신발, 옷, 장비와 자동차 등에 묻은 바이러스는 간접전파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한 폴란드의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멧돼지 이동성은 아프리카돼지열병과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었다”며 “모계 중심으로 무리지어 생활하는 멧돼지들은 무리 간 교류가 적고, 침 등 분비물 내 바이러스는 오래 잔존하지 못하며, 단기간 내 치사율이 90~100%인 아프리카돼지열병 감영 동물은 멀리 이동하지 못하고 사망한다”고 밝혔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