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대구·명태는 한때 동아시아 공용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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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교수, 동해 한류성 어종 이름 전파과정 분석
청어(靑魚), 대구(大口), 명태(明太)는 모두 한반도 동해안에서 나는 한류성 어종이다.
한국, 중국, 일본은 바다를 일부 공유하지만, 현재 세 생선에 대한 이름은 모두 다르다.
중국에서는 청어를 '페이위', 대구를 '쉬에위', 명태를 '시아쉬에'라고 주로 부른다.
일본에서도 청어, 대구, 명태를 각각 '니신', '다라', '스케토오다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옛 문헌을 찾아보면 과거에는 한국 생선 명칭인 청어, 대구, 명태가 동아시아에서 두루 통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문기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달 29∼30일 개최한 '근현대 동아시아 어민문화와 그 전개' 학술대회에서 "청어, 대구, 명태가 어명(魚名) 측면에서는 조선 물고기로부터 동아시아 물고기로 나아갔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먼저 조선 후기 문신인 성해응(1760∼1839)이 문집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서 세 생선이 함경도 바다인 북해(北海)에서 잡힌다고 설명한 대목에 주목했다.
성해응은 청어, 대구, 명태는 속명(俗名), 즉 우리 고유 이름이라며 우리나라 사람만이 이익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에는 '푸른 생선'을 의미하는 청어라는 단어가 없었을까.
김 교수는 중국에 청어를 뜻하는 '청'(鯖)이라는 한자가 존재했으나, 여기에서 말하는 청은 민물고기였다고 지적했다.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보면 중국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등장하는 청어는 바다생선인 조선 청어와 다르다는 내용이 있다.
김 교수는 "16세기 후반이 되면 중국에도 바다청어가 나타났고, 민물청어와 구분하기 위해 '해청어'(海靑魚)라는 말이 생겼다"며 "청어라는 말은 중국에서 먼저 사용했지만, 바다청어를 일컫는 청어의 원조는 조선"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에서도 청어는 본래 고등어를 의미했으나,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이 1709년에 내놓은 '대화본초'(大和本草)에서 청(鯖)은 고등어, 청어(靑魚)는 청어로 분류해 썼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일본 학자가 동의보감을 언급한 사례가 있어 청어라는 단어가 조선에서 전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대구도 청어와 상황이 비슷했다.
대구는 동해에서 잡았기 때문에 중국에는 없었고, 대구를 가리키는 한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중국 바다에서 '어느 때'부터인지 대구가 출현하자 이를 조선 단어인 '대구'(大口)라고 했다"고 논했다.
일본은 본래 대구를 '설'(설<魚+雪>)이라고 적었는데, 17세기 말에 '대구'와 흡사한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글자는 큰 대(大) 아래에 입 구(口)를 썼는데, 1682년 조선통신사 수행원 홍세태가 '대구'라고 일본인에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 교수는 명태는 청어나 대구보다 분포 범위가 북쪽이어서 서해에 유입된 적이 없고, 중국과 일본도 뒤늦게 존재를 인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는 명태를 가리키는 한자가 애당초 없었고, 일본에서는 형체도 작고 맛도 나쁜 하품 생선으로 여겨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며 "19세기 중반 에도(江戶) 시대까지는 주목받지 못한 명태가 20세기 초반 홋카이도에서 청어 어업이 갑자기 쇠퇴하자 대체할 어종으로 새롭게 떠올랐다"고 돌아봤다.
이어 명란젓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큰 인기를 끌면서 '멘타이코'(明太子)라는 이름이 일본에 정착했다고 설명한 뒤 "중국 민간에서는 명태를 '밍타이위'라고 하고, 러시아에서도 '민타이'라고 한다는 점을 보면 명란젓 맛이 일본, 중국, 러시아에 명태라는 조선 어명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은 수산학이 발전하면서 자신들의 어명을 적극적으로 썼고, 일본 근대 수산학 영향을 받은 중국에서도 생선 이름이 바뀌었다"면서도 조선 물고기 이름이 18∼19세기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짚었다.
/연합뉴스
한국, 중국, 일본은 바다를 일부 공유하지만, 현재 세 생선에 대한 이름은 모두 다르다.
중국에서는 청어를 '페이위', 대구를 '쉬에위', 명태를 '시아쉬에'라고 주로 부른다.
일본에서도 청어, 대구, 명태를 각각 '니신', '다라', '스케토오다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옛 문헌을 찾아보면 과거에는 한국 생선 명칭인 청어, 대구, 명태가 동아시아에서 두루 통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문기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달 29∼30일 개최한 '근현대 동아시아 어민문화와 그 전개' 학술대회에서 "청어, 대구, 명태가 어명(魚名) 측면에서는 조선 물고기로부터 동아시아 물고기로 나아갔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먼저 조선 후기 문신인 성해응(1760∼1839)이 문집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서 세 생선이 함경도 바다인 북해(北海)에서 잡힌다고 설명한 대목에 주목했다.
성해응은 청어, 대구, 명태는 속명(俗名), 즉 우리 고유 이름이라며 우리나라 사람만이 이익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에는 '푸른 생선'을 의미하는 청어라는 단어가 없었을까.
김 교수는 중국에 청어를 뜻하는 '청'(鯖)이라는 한자가 존재했으나, 여기에서 말하는 청은 민물고기였다고 지적했다.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보면 중국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등장하는 청어는 바다생선인 조선 청어와 다르다는 내용이 있다.
김 교수는 "16세기 후반이 되면 중국에도 바다청어가 나타났고, 민물청어와 구분하기 위해 '해청어'(海靑魚)라는 말이 생겼다"며 "청어라는 말은 중국에서 먼저 사용했지만, 바다청어를 일컫는 청어의 원조는 조선"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본에서도 청어는 본래 고등어를 의미했으나, 가이바라 에키켄(貝原益軒)이 1709년에 내놓은 '대화본초'(大和本草)에서 청(鯖)은 고등어, 청어(靑魚)는 청어로 분류해 썼다고 부연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일본 학자가 동의보감을 언급한 사례가 있어 청어라는 단어가 조선에서 전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대구도 청어와 상황이 비슷했다.
대구는 동해에서 잡았기 때문에 중국에는 없었고, 대구를 가리키는 한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중국 바다에서 '어느 때'부터인지 대구가 출현하자 이를 조선 단어인 '대구'(大口)라고 했다"고 논했다.
일본은 본래 대구를 '설'(설<魚+雪>)이라고 적었는데, 17세기 말에 '대구'와 흡사한 한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글자는 큰 대(大) 아래에 입 구(口)를 썼는데, 1682년 조선통신사 수행원 홍세태가 '대구'라고 일본인에게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김 교수는 명태는 청어나 대구보다 분포 범위가 북쪽이어서 서해에 유입된 적이 없고, 중국과 일본도 뒤늦게 존재를 인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는 명태를 가리키는 한자가 애당초 없었고, 일본에서는 형체도 작고 맛도 나쁜 하품 생선으로 여겨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며 "19세기 중반 에도(江戶) 시대까지는 주목받지 못한 명태가 20세기 초반 홋카이도에서 청어 어업이 갑자기 쇠퇴하자 대체할 어종으로 새롭게 떠올랐다"고 돌아봤다.
이어 명란젓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큰 인기를 끌면서 '멘타이코'(明太子)라는 이름이 일본에 정착했다고 설명한 뒤 "중국 민간에서는 명태를 '밍타이위'라고 하고, 러시아에서도 '민타이'라고 한다는 점을 보면 명란젓 맛이 일본, 중국, 러시아에 명태라는 조선 어명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19세기 후반에 일본은 수산학이 발전하면서 자신들의 어명을 적극적으로 썼고, 일본 근대 수산학 영향을 받은 중국에서도 생선 이름이 바뀌었다"면서도 조선 물고기 이름이 18∼19세기 중국과 일본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고 짚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