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공정성의 도그마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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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대학 교수 '깜깜이 채용' 해선 안될 일
지속성장 위해 불공정 문제 적극 개선하되
민간의 자율·효율성 드높여야 경제 살아나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 총장 >
지속성장 위해 불공정 문제 적극 개선하되
민간의 자율·효율성 드높여야 경제 살아나
정갑영 <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前 총장 >
![[정갑영 칼럼] 공정성의 도그마에 대한 우려](https://img.hankyung.com/photo/201912/07.14213014.1.jpg)
실제로 공정사회 구현 정책은 사회 많은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 입시까지 공정성을 명분으로 조령모개(朝令暮改)하며 정시를 확대하고 있고, 경제 정책에서도 공평한 사회를 만들자는 정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비정규직을 줄이는 소득주도성장도 이런 틀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복지와 의료 부문에서도 분배와 형평 등 진보적 가치가 정책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공정과 형평을 강조하는 정책은 자칫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우선 목표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편견과 도그마에 빠져 극단적인 정책 수단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작은 불공평도 구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더 큰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깜깜이로 교수를 채용하는 경우도 공정성보다는 오히려 석학을 선별하지 못할 위험만 커지지 않겠는가.
교육 기회의 형평을 내세웠던 평준화 정책이 전형적인 사례다. 결과적으로 교육은 하향 평준화되고 신분 이동의 사다리마저 사라졌다. 누구나 부담 없이 다닐 수 있었던 지방 명문 학교들이 없어져 지금은 소외계층이 교육을 통해 ‘용’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개천’마저 메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교육 기회의 공평을 내세운 정책이 오히려 빈곤의 세습을 고착시키는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온 셈이다. 형평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정책도 결국은 자영업과 같은 취약 산업에 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다양한 특성을 가진 사안에 획일적인 형평을 밀어붙이면 기대했던 성과보다 본말이 전도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쉽다.
실제로 경제에서는 공평의 가치 못지않게 반드시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자율성과 효율성이다. 공정성의 도그마에 빠져 경직된 규제만 강화하면 결코 경쟁을 통한 효율성의 제고를 기대할 수 없다. 기업 규모와 지배구조는 물론 노동과 환경, 정보 등 많은 부문에서 공정과 형평을 지상 목표로 삼는 획일적 규제가 적용된다면, 새로운 혁신산업은커녕 어떻게 경제를 활성화하는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공평의 가치가 경제구조 안에서 지속적으로 구현되는 자생적인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민간의 자율성과 효율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는 지속성장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불공정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고용과 생산은 민간 부문의 활성화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자칫 포퓰리즘과 결합된 공정성의 도그마에 빠져 경제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마저 흔들린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황당한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