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의 법적 처리 시한인 2일에도 극한 대립을 이어갔다. 전날까지 가동되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야 교섭단체 간사 협의체인 소(小)소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철회를 요구하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예결위 간사의 참여 거부로 파행이 빚어졌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예산안 처리 무산의 책임을 두고 ‘네 탓 공방’을 일삼았다.

한국당 소속 예결위 예산조정소위 의원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내년도 예산안마저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 이용해 심의를 거부했다”며 “집권 여당 스스로가 민생을 내팽개치고 협의를 거부하는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준 초유의 사태”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예결위 3당 협의를 거부하는 배경에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을 통과시켜주는 조건으로 우호적인 정당과 의원의 지역구 예산을 적당히 챙겨주는 ‘짬짜미’ 수정안, 소위 뒷거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예산안 심사 거부 카드를 들고나온 건 정부 원안대로 예산안이 처리되더라도 무방하다는 판단이 작용해서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이미 본회의에 원안대로 부의된 상태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와 미리 협의해왔기 때문에 여당 지역구 관련 예산은 원안에 반영돼 있다”며 “협의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야당 손해만 극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에 필리버스터 철회를 압박하면서 한국당을 제외한 야 4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과의 ‘4+1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129명)과 정의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야 4당 소속 의원을 합치면 과반(148명)이 돼 예산안 통과가 가능하다.

민주당 소속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 위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차별적 필리버스터로 민생법안을 볼모로 삼은 한국당이 예산 심사 지연마저 남 탓을 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예산 심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한국당”이라며 “3당 간사 간 협의체 구성을 두고 한국당 소속 위원장의 참여를 고집했고, 회의·속개록 공개 등 무리한 주장을 하며 수일간 심사를 지연시켰다”고 했다.

내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을 따내야 하는 현역 의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지역구 민원성 예산, 이른바 ‘쪽지 예산’을 밀어넣는 창구인 소소위가 닫힌 셈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원안 통과를 자신했지만 한국당을 제외한 다른 야당의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예산안 수정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예산안을 지렛대로 여야 협상을 유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 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여야 모두 엄중한 민생경제 상황을 상기해야 한다”며 “밤을 새워서라도 예산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촉구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