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원조 부촌’으로 통하는 평창동과 성북동 단독주택 가격을 따라잡았다. 강남 전용면적 85㎡ 아파트값이 전통 부촌 대지면적 660㎡ 안팎 단독주택값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단지 안에서 여가·레저·문화생활 등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아파트가 진화하면서 아파트 선호 현상이 더욱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 강남권 전용 84㎡ 아파트값이 전통 부촌인 종로구 평창동, 성북구 성북동의 단독주택 매매가격과 비슷해졌다. 성북구의 고급 단독주택 모습.  /한경DB
서울 강남권 전용 84㎡ 아파트값이 전통 부촌인 종로구 평창동, 성북구 성북동의 단독주택 매매가격과 비슷해졌다. 성북구의 고급 단독주택 모습. /한경DB
부촌 단독주택값=강남 중소형 아파트값

3일 일선 중개업소에 따르면 평창동 성북동의 단독주택(대지면적 660㎡ 안팎) 매매가격은 강남 반포·청담·대치동에 있는 중형 아파트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평창동에선 30억원 정도면 평균 수준의 단독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토지 실거래가 정보를 제공하는 밸류맵에 따르면 평창동 대지면적 694㎡ 단독주택은 지난 3월 31억원에 매매됐다. 최근 급매로 나온 평창동 타운하우스는 27억원에 주인을 찾고 있다. 대지면적 470㎡ 규모로 복층에 야외 테라스가 딸린 집이다.

평창동 K공인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값이 최근 5년간 폭등했지만 부촌 단독주택 가격은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했다”며 “메인도로를 끼고 있는 곳은 3.3㎡당 3600만원(대지면적 기준), 안 좋은 위치는 1000만~1500만원 선에 거래된다”고 말했다.

성북동 단독주택(대지면적 691㎡)도 3월 37억원에 주인을 만났다. 대지면적 623㎡ 단독주택은 35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성북동에서도 30억원대면 중하위급 단독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단독주택을 팔면 강남 한강변에선 전용 84㎡ 정도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다. 지난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34억원에 팔렸다. 인근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4㎡도 31억원에 거래됐다. 호가는 이미 30억원대 중후반을 넘어섰다. 청담동 청담자이 전용 89㎡는 10월 32억3000만원에 손바뀜됐다.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도 8월 28억원에 가깝게 거래되면서 30억원대를 넘보고 있다.

다만 이들 부촌에서 입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곳에 자리잡았거나 새로 지어진 주택은 강남 중형 아파트값보다 비싸다. 평창동에서 최근 지어진 집은 50억원을 호가한다. 최고급 주택이 몰려 있는 성북동 330 일대 단독주택도 50억원을 훌쩍 넘는다.

평창동 저택만큼 비싸진 강남 중소형 아파트
아파트 선호 현상 심화

서울에서 평창동·성북동은 한남동과 함께 전통 단독주택 부촌으로 꼽힌다. 북한산을 끼고 있어 조망권이 뛰어난 데다 공기도 맑아 자산가와 국내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이 선호했다. 가격 측면에서도 강남 아파트가 넘보기 어려웠다. 강남 아파트는 2000년대만 해도 10억원대에 머물렀다.

최근 들어 강남 아파트가 부촌 단독주택 가격을 따라잡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의 진화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요즘 지어지는 아파트는 골프연습장 피트니스센터 독서실 수영장 사우나 등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테마파크, 인피니티풀, 실내 클라이밍 시설 등을 갖춘 아파트까지 나왔다. 조식 컨시어지 세탁 문화강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나오고 있다. 고급주택관리업체인 타워피엠씨의 장세준 대표는 “10년 전 아파트와 요즘 아파트의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단지 안에서 원스톱 라이프가 가능하다 보니 아파트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선 집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전통 부자의 자녀 중 상당수는 강북 단독주택이 아니라 강남 아파트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통 부촌 거주자들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평창동 J공인 대표는 “평창동 사람치고 강남에 아파트 한두 채 안 가진 사람이 없다”며 “진짜 부자들이 중시하는 건 가격이 아니라 이곳에서밖에 즐길 수 없는 멋진 조망과 깨끗한 공기”라고 말했다.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