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일러스트 = 이정희 기자 ljh9947@hankyung.com
미국 백화점업계는 쇠락하고 있다. 시어스, 카슨스 등 100년 이상의 전통을 이어온 백화점 체인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고급 백화점 바니스뉴욕마저 지난 8월 파산 신청을 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도 이겨낸 백화점 체인들이 온라인 시장의 급격한 팽창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117년 전통의 백화점 체인 JC페니도 마찬가지다. 전자상거래 확대로 10년간 경영 부진을 겪었다. 12년 전 주당 82달러(2007년 3월 23일 종가)에 거래됐던 이 회사 주가는 올 8월 55센트까지 떨어졌다. 현재 주가도 1달러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JC페니는 지난 10여 년간 최고경영자(CEO)를 네 번 바꾸며 혁신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질 솔타우는 작년 10월 영입된 이 회사 첫 여성 CEO다. JC페니의 경영 정상화를 이끌 마지막 카드로서 주목받고 있다.

30년 경력 쌓은 유통 베테랑

솔타우 CEO는 30년 경력의 유통업계 베테랑이다. 미국 위스콘신주의 작은 시골 마을 비로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위스콘신대 스타우트캠퍼스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첫 직장은 백화점 체인 카슨 피리 스콧(현 카슨스)이었다. 이곳에서 상품 기획, 브랜드 관리 등 핵심 업무를 익혔다. 이후 다른 백화점 체인인 시어스, 콜스 등에서 임원을 거쳤다. 2007년 위스콘신주 기반의 소매업체 숍코로 자리를 옮겨 2013년 숍코 CEO에 올랐다.

경영자로서 평가받기 시작한 건 2015년 조안페브릭스의 CEO를 맡으면서다. 직물·공예품 판매에 강점이 있는 이 회사는 미국 전역에 850개의 상점을 보유하고 있다. 온라인 거래가 확산되면서 경영 위기에 처했다. 솔타우 CEO는 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해 소비자 중심 마케팅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회사를 위기에서 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JC페니는 조안페브릭스 정상화보다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1902년 설립된 미국의 대표 백화점 체인 JC페니는 미국 50개 주 중 하와이를 제외한 49개 주에서 800여 개의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수년간의 경영 실패와 매출 감소, 손실 등으로 부채만 40억달러 이상 지고 있다.

기본에 충실 강조

솔타우 CEO는 취임 후 “기본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수익성 낮은 방식으로 매출을 늘리는 것은 잘못”이라며 “목표 지향적이고 효율적인 경영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영 부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외형 부풀리기에 매달리다 보면 정작 수익성은 나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투자자에겐 “변화가 느리더라도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데 시간을 쓰겠다”고 했다.

미국 언론들은 솔타우 CEO의 신중한 접근 방식을 론 존슨 전임 CEO의 빠른 방식과 비교한다. 애플 출신인 존슨 전 CEO는 애플 스토어를 성공으로 이끈 스타 경영자였다. 그는 2011년 취임 후 JC페니의 낡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기업 로고부터 각종 할인 프로그램까지 한꺼번에 교체했다. 수익성이 높은 자체 의류 브랜드 사업은 중단하고, 대신 젊은 층이 선호하는 고가 의류 브랜드를 대거 선보였다. 일종의 애플식 개혁을 JC페니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존슨 전 CEO의 개혁은 실패했다. 기존 고객은 떠났고 수익성은 나빠졌다. 2011년 취임 당시 68억4000만달러에 달하던 매출은 2년 만에 38억8000만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시각적 상품화 전략에 집중

솔타우 CEO는 비주얼 머천다이징(visual merchandising·시각적 상품화)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마빈 엘리슨 전 CEO의 전략과는 반대다. 2014년부터 작년 10월 솔타우 CEO가 임명되기 전까지 JC페니를 맡았던 엘리슨 전 CEO는 가전제품, 가구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 라인을 선보이는 데 공을 들였다. 솔타우 CEO는 론칭 3년 만에 JC페니 내 가전제품 매장을 없앴다. 대신 점포와 평면도를 매력적으로 바꾸는 데 집중했다. 솔타우 CEO는 “우리는 시각적 상품화가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해 판매를 촉진한다는 것을 안다”며 “시범적으로 92개 백화점에서 시각적 상품화 테스트를 한 뒤 점포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쇼핑 마니아’를 공략하는 전략도 솔타우 CEO의 핵심 전략 중 하나다. 솔타우 CEO는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쇼핑 마니아를 공략해야 한다”며 “이런 고객은 아마존 등의 온라인 경쟁자에 뺏길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그는 “쇼핑 애호가들이 백화점을 다시 방문할 만한 매력적인 장소로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JC페니는 지난 3분기 9300만달러 순손실을 거뒀다. 여전히 마이너스이긴 하지만 작년 동기(1억5100만달러)보다 손실 규모가 크게 줄었다. 재고량 역시 크게 감소했다. 그 덕분에 실적 발표 당일(지난달 18일) 주가는 6.4% 급등했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솔타우 CEO가 현명한 조치를 하고 있다”며 “그는 고통스럽게 천천히 움직이며 JC페니가 돼야 할 것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있다”고 평했다.

물론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한 리테일 전문가는 “신용등급 강등과 채권 만기가 가까워지는데 솔타우 CEO는 쇼핑객과 투자자에게 큰 감명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JC페니의 시가총액은 현재 3억5000만달러(2일 종가 기준) 안팎이다. 1년 전에는 시총 4억달러를 웃돌았고 2년 전에는 10억달러 이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JC페니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