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이 전방위로 맞부딪치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시작된 무역 갈등이 인권과 체제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이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몰려 있는 미·중의 ‘1단계 무역합의’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월가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달 들어 이틀간의 갈등만으로 다우존스지수가 2%가량 하락했는데 무역합의가 불발에 그치면 글로벌 증시가 단기 급락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美·中 격돌, 무역 넘어 인권·기술·체제까지 전방위 확산
미국 하원은 3일(현지시간)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위구르법 2019’를 찬성 407표, 반대 1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신장위구르지역에서 무슬림 소수민족의 인권을 탄압한 중국 정부 관리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자산을 동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자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외교부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등 관계 기관이 일제히 성명을 내고 미국을 규탄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성명을 통해 “강렬한 분개와 단호한 반대를 표시한다”고 밝혔다. 화 대변인은 “해당 법안은 신장위구르 인권 상황을 폄훼하고 극단화와 테러리즘을 막으려는 중국의 노력을 모독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장은 순수한 중국의 내정에 속하며 외국의 어떤 간섭도 용납할 수 없다”면서 “미국은 즉시 잘못을 바로잡고 법안의 발효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美·中 격돌, 무역 넘어 인권·기술·체제까지 전방위 확산
화 대변인은 “중국은 형세 변화에 따라 한걸음 더 나아간 대응을 할 것”이라며 보복 조치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중국 지도부의 심중을 대변하는 매체로 평가받는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 정부가 미국 의원 등 관련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고 미국 기업을 겨냥한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블랙리스트)’을 공개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블랙리스트에는 퀄컴과 인텔, 브로드컴, 구글 등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이 대거 포함될 것이라고 전했다.

외교부에 이어 신장 문제를 다루는 중국 국가민족위원회와 전인대·정협 외사위원회도 잇따라 성명을 내고 법안 통과를 비난했다. 이들 기관은 “미국은 즉시 중국 내정 간섭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협상에 데드라인은 없다며 중국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영국 런던 주재 미국대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과의 합의를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원 사격’에 나섰다. 로스 장관은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 이후로 협상을 미루면 중국이 가진 전략적 지렛대를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중 충돌이 격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였다. 3일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280.23포인트(1.01%) 하락한 27,502.81에 거래를 마쳤다. 4일 아시아 시장에선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1.05%, 한국 코스피지수가 0.73% 내렸다. 이날 위안화 환율은 0.23% 상승(위안화 가치는 하락)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7원10전 올라 달러당 1194원30전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10월 10일 이후 약 두 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월가는 미·중 무역합의 불발 공포에 떨고 있다. 에던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글로벌경제총괄은 “시장은 그동안 양국 간 스몰딜이 있을 것으로 절대적으로 믿어왔는데 딜이 없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강동균/뉴욕=김현석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