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초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11월까지 0%대를 기록 중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 빠뜨린 디플레이션(deflation)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 경제가 맞닿은 새로운 국면을 진단해본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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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물가가 아니라 사회의 모든 현상이 수축되는 것을 디플레이션으로 봐야 합니다. 한국도 이미 디플레이션의 초입에 들어와 있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사진)는 디플레이션을 경제학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물가와 경제성장률이 함께 하락하고 있다.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홍 대표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으로 15년 전부터 세계 경제의 수축에 대한 경고음을 울려왔다. 2004년 '디플레이션 속으로', 2014년 '세계가 일본된다', 2018년 '수축사회' 등의 책을 출간하며 세계와 한국 경제를 분석하고, 생존전략을 탐구했다.

디플레이션은 경제학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로 인한 기업들의 실적부진과 임금 하락, 가계 소비여력 감소, 줄어든 소비가 다시 상품 가격을 하락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은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 '잃어버린 20년'의 전조였다.

◆ "11월 소비자물가 상승, 좋아할 일 아냐"

통계청이 밝힌 올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4% 하락했다. 지난 8월도 1년 전보다 0.038% 떨어져 사실상 두 달 연속 '마이너스(-)'다. 다만 공식 상승률은 소수점 한 자릿수까지만 따져 9월이 사상 최초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 됐다. 10월에는 0%, 11월에는 0.2%를 기록해 마이너스에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홍 대표는 "11월에 찔끔 올랐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며 "경제학자들은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나와야 디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현재가 이미 수축사회, 디플레이션이다"고 주장했다.

수치적 디플레이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물가가 하락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 가격을 반영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인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는 이미 4분기 연속 마이너스인 점도 지적했다. 디플레이션은 수축사회의 한 현상이라고 봤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수축사회에 진입하는 이유로 공급과잉, 인구감소, 과학기술의 발달 등을 꼽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고, 이는 공급과잉으로 이어져 상품 가격을 하락으로 불러왔다. 또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 고용 및 소비 감소를 낳고 있다. 저출산에 따라 실제 인구도 줄고 있다. 환경과 안전(보안) 등 기존에는 쓰지 않았던 부분에도 많은 돈(비용)을 지불 중이다.

홍 대표는 "역사상 전대미문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를 전통 경제학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단순하게 정부 돈, 재정을 투입해서는 현재의 디플레 상황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재정을 쓰는 것은 맞다"며 "초점은 돈을 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보라고 했다. 일본이 디플레에 들어갈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는 60~70% 정도였다. 올 6월 기준 정부부채는 GDP의 237%에 달한다. 그럼에도 올해 GDP 성장률은 0.5%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홍 대표는 "일본의 실패는 투자형이 아닌 쓰면 사라지는 토건 등 소비형에 돈을 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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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재건 수준의 대응, 대규모 투자 필요

구조적 디플레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저출산·4차산업 등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고 봤다.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건 수준의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지금 한국의 재정은 소비형으로 쓰는 비중이 많다"며 "현재의 침체가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자를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플레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일본은 1990년대 9명의 총리가 나왔다. 평균 1년 임기의 총리들은 전임이 10조엔을 썼으면 다음에는 12조엔을 썼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인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 때는 40조엔까지 재정을 썼다. 그럼에도 디플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의 임금 수준은 1997년이 최고치였다. 20년이 넘도록 월급이 오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디플레 초기에 대규모 재정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홍 대표의 주장이다. 이를 마중물로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교과서적으로 디플레를 보면 해법이 없다"며 "현재의 상황은 주기적인 경기순환의 침체가 아니다.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민수 한경닷컴 기자 h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