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관계가 ‘강 대 강’으로 치달으면서 비핵화 시계가 2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이 제시한 ‘협상 연말 시한’이 다가오는데도 미국이 변화가 없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을 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북 간 말싸움도 한층 거칠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8일 김정은을 향해 “적대행동을 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최후통첩성 경고를 보냈다. 그러자 김영철 아태평화위원장은 ‘망령 든 늙다리’라는 막말까지 동원하며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맞받아쳤다. ‘화염과 분노’ 등 말폭탄을 주고받던 2017년을 떠올리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외교적 압박에 나섰다. 북한이 한국을 겨냥해 단거리 미사일을 쏠 때는 무시했지만 ICBM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자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반대로 북한은 ICBM 도발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치적에 흠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양보를 압박하고 있다. 연말까지 도발 수위와 말폭탄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레드라인’을 넘는 도발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군사옵션을 검토하는 등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가짜 비핵화 합의를 할 가능성도 있다. 두 가지 시나리오 모두 한반도 안보에 최악이다.

그동안 북한은 ICBM 기술을 더욱 고도화했다. 북한의 ‘비핵화 쇼’에 속아넘어가 시간만 벌어준 꼴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북한이 영구 폐쇄를 약속한 동창리 시설을 재가동했는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지도 않았다.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까지 미루며 록밴드 U2의 리더인 보노를 만나 평화 얘기만 했다.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대놓고 위반해도 대화에 매달리며 북한 눈치를 보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쇼에 더 이상 놀아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