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12월에 이뤄지던 삼성그룹 정기인사가 내년으로 연기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인사총괄 임원을 비롯해 20여 명의 현직 임원들이 각종 재판에 연루돼 있는 데다 재판 결과도 예상보다 긍정적이지 않아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혐의 관련 재판 진행 속도도 더뎌지면서 인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삼성 안팎의 분석이다.
'재판 리스크'…삼성 인사 결국 해 넘긴다
24명 전·현직 임원 재판 연루

11일 삼성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삼성 주요 계열사들은 내년으로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연기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에는 계열사별로 12월 초 인사를 시작해 12월 중순까지 순차적으로 인사를 끝내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재판 일정이 큰 변수가 됐다. 원래 이달 중 증인신문이 끝나고 이르면 내년 1월 말에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담당 재판부가 추가 증인 신문을 위해 다음달 17일 4차 공판을 열겠다고 했다. 추가 공판이 열리면 판결은 내년 2~3월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현직 임원들이 연루된 재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9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증거인멸 관련 재판에서 삼성 부사장급 인사 3명이 각각 1년6개월~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서는 집행유예형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핵심 부사장급 인사 3명 모두 1년6개월 이상의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삼성 임원진이 관련된 선고 공판은 더 있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설립 방해 의혹 사건 1심 공판이 각각 13일과 17일에 열린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사건에 5명의 전·현직 임원이 연루돼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사건에선 13명의 전·현직 임원이 피고인이다. 두 사건에 현직 임원만 15명이 포함돼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재판엔 삼성전자 인사팀장 출신 최고경영자(CEO) 2명뿐 아니라 삼성전자 인사팀장 등 현직 인사팀 임원 2명이 들어가 있다.

2016년 이후 사실상 수시인사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여러 과제를 던진 점도 삼성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부는 1차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준법감시제도 강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3차 공판에선 “다음에 똑같은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수 있는 삼성 차원의 답을 다음 기일까지 제시해달라”고 주문했다. 준법감시 강화나 정경유착 방지 같은 현안들이 삼성 인사나 조직개편과 맞물려 있다는 게 삼성 안팎의 관측이다.

기존에 확정된 일정도 인사 연기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주요 재판이 끝난 17일 이후 인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16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2019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가 변수가 됐다. 해외 법인장을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경기 수원과 화성 등에 모여 내년 사업전략을 논의하는 중에 인사 결과가 발표되면 혼란이 커질 수밖에 없다. 23일 이후엔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부분 계열사들이 연말 휴가에 들어간다. 삼성 관계자는 “2017년 이후 상황에 따라 정기인사 시기를 조절해왔기 때문에 반드시 12월 인사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은 2015년까지 매년 12월 초 전 계열사 인사를 했다.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동시에 하거나 하루 이틀 사이에 순차적으로 발표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삼성 정기인사는 유동적으로 변했다. 그해 인사는 2017년 상반기로 연기됐고 전 계열사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던 인사도 전자와 금융, 물산 등으로 나눠 발표됐다. 지난해엔 삼성물산은 1월과 12월에 임원 인사를 했다.

정인설/황정수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