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원입법 규제영향분석제도 도입해야
20대 국회가 발의한 제·개정 법률안은 2만2364건에 달한다. 19대 국회에 비해 34% 늘었는데 이는 영국의 26배, 일본의 37배에 이른다. 기묘하고 엉뚱한 생산성이다. 이들 제·개정 법률안 중 80% 정도가 규제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규제입법 현황도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국회법상 규제사항을 파악하는 절차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규제는 기존 질서를 교란하고 사회의 자율성을 잠식한다. 세금과 똑같이 그 대가를 경제사회에 부담시킨다. 규제를 ‘숨겨진 세금(hidden tax)’이라 부르는 이유다.

국회에 상정된 규제들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다. 첫째, 산업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려 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위탁기업 기술유용 행위를 추정하고 △중소벤처기업부의 처벌권한을 강화하고 △조사시효를 무기한으로 설정하는 등 규제 강화 조치를 도입하고 있다. 대기업이 거래처를 바꾸려면 큰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원래의 법정신은 대·중소기업의 자율적 상생 협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동기 부여를 하고 인센티브를 주라는 것이다. 개정안은 이런 법정신에 위배된다. 이런 식으로 산업적 거래의 유연성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상식적인 인과관계를 외면하고 엉뚱한 처방으로 규제하는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가 나면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하고 산재사고가 나면 해당 공정을 폐쇄하거나 막무가내로 바꿔버린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는데도 애써 무시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셋째, 사회나 시장에 혼란을 떠넘기는 경우도 많다. 그 혼란은 관료들에게 이득이 되고, 보신과 편의만 지향하는 재량행정의 토양이 된다. 4차 산업혁명을 향한 첫 번째 단추로 여겼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그렇다. 개정안(28조의 2)은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도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 목적으로 가명정보 처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에 어떤 연구가 포함되는지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아 산업 연구현장에서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개인정보처리를 산업 연구개발 목적으로 하지 못하게 한다면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왜 필요하나?

넷째, 혁신과 도전에 온 힘을 써야 할 기업들의 발목을 너무 심하게 잡는다. 상법 개정안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및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 등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간섭이 지나친 것은 물론 조급해 보인다. 지난 몇 년간의 상법 등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많은 법령들의 효과와 부작용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지금 논의되는 집중투표제 및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도입되면 국내 주요 기업의 이사회가 해외 투기자본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집중투표제를 동시에 도입하는 경우에 외국 기관이 연합하면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7개 기업 이사회가 해외 투기자본(외국 연합)에 넘어간다고 한다. 한편 전자투표제 의무화는 해킹, 오류의 가능성이 높으며 자사주 규제로 인한 지주회사 전환 비용 증가로 고용과 투자를 위축시킬 우려가 높다.

다섯째, 거의 대부분의 의원입법 규제는 일관되게 벌칙을 강화한다. 정책과 제도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며 조율할 수 있는데 사회에 겁주고 두려움에 떨게 해서 무슨 좋은 일을 이루려 하는가?

현대사회는 불확실성에 가득 차 있어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다. 복잡성으로 인해 원인과 결과를 어렴풋이라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국가의 제도는 매우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또 통찰력 있게 모색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험한 길을 가야 한다. 제도는 손에 맞는 랜턴과 보호 장비와 상세한 지도로 그 여행가를 도와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 규제입법들은 불꽃놀이 행사 몇 번 하고 큰 요금을 시민에게 청구하는 격이다. 시민들은 이런 촌극을 알아보고 꾸짖어야 한다. 의원입법 규제에 대해 그 효과와 부담을 사전에 평가하는 규제영향분석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국회법의 한 조항만 개정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