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제프 베이조스·폴 폴먼처럼 멀리 봐야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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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사이트
비나 벤카타라만 지음 / 이경식 옮김
더난출판 / 480쪽 / 1만7000원
비나 벤카타라만 지음 / 이경식 옮김
더난출판 / 480쪽 / 1만7000원
“성공의 본질적인 측정치는 우리가 장기적으로 창조할 주주가치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1997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는 분기별 수익과 단기 주가를 목표로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고객을 얼마나 늘려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제시했다. 재구매 횟수를 기반으로 한 고객 충성도 측정 방법도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잣대로 회사의 발전 궤적을 그려 보였다. 직원들에겐 현금보다 스톡옵션을 지급했고 회사의 수익은 성장을 위해 재투자했다. 거의 20년간 아마존의 수익은 ‘0’ 상태에 머물렀다. 주주들에게 배당금도 거의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1997년 주당 5달러 안팎이던 아마존 주가는 20년 후 1000달러가 넘었다.
10년 전 폴 폴먼이 유니레버의 최고경영자(CEO)가 됐을 때 그는 회사가 자신의 재임 기간이 아니라 한 세기 넘게 성장을 거듭하길 바랐다. 그는 팜오일 같은 천연 원재료의 공급망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분기별 수익 예측에 대한 발표를 멈췄다. 고위 경영진의 연봉은 유니레버의 탄소배출량 감소 같은 장기 목표와 연동했다. 정체 일로였던 유니레버의 영업이익은 그의 재직 기간 동안 두 배 넘게 늘었다. 기업의 지속 가능 목표를 달성한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실적 개선에 따른 상여금 외에 추가 보너스도 받았다.
대부분 기업은 당장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 목을 맨다. CEO들은 자신의 임기 내 올릴 실적에 집중한다. 베이조스와 폴먼은 달랐다. 그 차이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포사이트>는 왜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만 좇아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책이다. 미국 MIT 과학기술사회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기후 변화 혁신담당 선임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책 제목인 ‘포사이트(foresight)’는 단순한 예측을 넘어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예견하고 대비책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의미한다. 저자는 “포사이트를 갖는다면 기업은 보다 더 많은 수익을 기록할 수 있고 자치단체들은 번영할 것이며 문명은 예측 가능한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내일 예정돼 있는 축구 경기 때 비가 올 것이란 걸 안다는 것과 그 경기를 보러 갈 때 실제 우산을 들고 가는 것 사이의 차이’라는 비유가 쉽게 와 닿는다.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맞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통찰, 그에 따른 선택과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의 우리뿐 아니라 미래의 우리를 위해서도 최상의 선택을 해야 한다”며 “포사이트는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판단력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부터 인도의 소액금융산업 붕괴,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슈퍼박테리아의 출현과 조기에 막지 못한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 안전진단을 무시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다양한 사례를 살펴본다. 매번 ‘경고 신호’는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외면해 위기를 키웠다. 때론 사소한 선택이었고 당시엔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 결정이었다. 그것이 계속 축적돼 사고가 터졌고 재앙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무모하거나 경솔한 게 아니라 그저 불운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사례들을 다양한 의사결정의 맥락에서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20년을 주기로 원형을 그대로 살려내 개축하는 이세신궁(伊勢神宮)과 8만 년 동안 살아남은 나무 군락 판도(Pando), 초침은 1년에 한 번, 분침은 100년에 한 번 움직이는 롱나우재단의 ‘만 년 시계’ 건설 프로젝트 등은 그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을 만한 사례로 등장한다.
책 마지막에선 개인과 가정, 기업과 조직, 자치단체와 사회 차원으로 나눠 ‘포사이트’를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너무 적고 간략하게만 언급해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는 점은 아쉽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
10년 전 폴 폴먼이 유니레버의 최고경영자(CEO)가 됐을 때 그는 회사가 자신의 재임 기간이 아니라 한 세기 넘게 성장을 거듭하길 바랐다. 그는 팜오일 같은 천연 원재료의 공급망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분기별 수익 예측에 대한 발표를 멈췄다. 고위 경영진의 연봉은 유니레버의 탄소배출량 감소 같은 장기 목표와 연동했다. 정체 일로였던 유니레버의 영업이익은 그의 재직 기간 동안 두 배 넘게 늘었다. 기업의 지속 가능 목표를 달성한 성과를 인정받은 그는 실적 개선에 따른 상여금 외에 추가 보너스도 받았다.
대부분 기업은 당장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 목을 맨다. CEO들은 자신의 임기 내 올릴 실적에 집중한다. 베이조스와 폴먼은 달랐다. 그 차이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포사이트>는 왜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만 좇아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책이다. 미국 MIT 과학기술사회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기후 변화 혁신담당 선임자문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책 제목인 ‘포사이트(foresight)’는 단순한 예측을 넘어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예견하고 대비책을 실행에 옮기는 능력을 의미한다. 저자는 “포사이트를 갖는다면 기업은 보다 더 많은 수익을 기록할 수 있고 자치단체들은 번영할 것이며 문명은 예측 가능한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내일 예정돼 있는 축구 경기 때 비가 올 것이란 걸 안다는 것과 그 경기를 보러 갈 때 실제 우산을 들고 가는 것 사이의 차이’라는 비유가 쉽게 와 닿는다. 미래 예측서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맞을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통찰, 그에 따른 선택과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현재의 우리뿐 아니라 미래의 우리를 위해서도 최상의 선택을 해야 한다”며 “포사이트는 미래를 내다보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판단력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부터 인도의 소액금융산업 붕괴,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슈퍼박테리아의 출현과 조기에 막지 못한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 안전진단을 무시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다양한 사례를 살펴본다. 매번 ‘경고 신호’는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외면해 위기를 키웠다. 때론 사소한 선택이었고 당시엔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한 결정이었다. 그것이 계속 축적돼 사고가 터졌고 재앙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무모하거나 경솔한 게 아니라 그저 불운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사례들을 다양한 의사결정의 맥락에서 파고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 것이다. 20년을 주기로 원형을 그대로 살려내 개축하는 이세신궁(伊勢神宮)과 8만 년 동안 살아남은 나무 군락 판도(Pando), 초침은 1년에 한 번, 분침은 100년에 한 번 움직이는 롱나우재단의 ‘만 년 시계’ 건설 프로젝트 등은 그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을 만한 사례로 등장한다.
책 마지막에선 개인과 가정, 기업과 조직, 자치단체와 사회 차원으로 나눠 ‘포사이트’를 키우는 방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책 전체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너무 적고 간략하게만 언급해 실질적으로 와닿지 않는 점은 아쉽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