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왼쪽 두번째)이 1987년 전경련 신임 회장단 축하 행사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왼쪽 첫번째) 등과 환담하고 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왼쪽 두번째)이 1987년 전경련 신임 회장단 축하 행사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왼쪽 첫번째) 등과 환담하고 있다.
14일 타계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25년(1970~1995년)간 ‘기술입국(技術立國)’의 일념으로 전자와 화학 분야의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아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 공장과 여천 공장에는 공장이 채 가동되기도 전에 연구실이 먼저 만들어졌다. 그는 각 공장별로 소규모 연구실을 운영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76년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금성사(현 LG전자)에 전사적 차원의 중앙연구소를 설립토록 했다.

1974년에는 제품개발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산업 디자인 분야의 육성을 위해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실을 발족시키고 일본 등 디자인 선진국에 연수를 지원하는 등 전문가 육성에 힘썼다.

1979년 당시 정부는 산업화 과정에서 기술의 낙후성을 절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덕에 대규모 연구단지를 조성하여 민간기업의 입주를 권장하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 기업들은 연구단지 입주를 놓고 투자 자체를 기피하던 시절이었지만 럭키는 대덕연구단지 내 민간연구소 제1호로서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켰다. 1985년에는 금성정밀과 금성전기, 금성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였다. 같은 해 한국 최초로 개설된 제품시험연구소는 가혹환경 시험실, 한냉·온난 시험실, 실용 테스트실 등 국제적 수준의 16개 시험실을 갖춰 금성사 제품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하게 했다.

기술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지수초등학교 교사였을 때부터 싹텄다. 미래에는 틀림없이 기술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고, 기술력 양성을 교육 중점목표에 넣었다. 연구소가 없었던 시절 구 회장이 공장을 순방해서 가장 먼저 보고 받는 것이 신제품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는 시간이 나는 대로 현장의 연구진들을 만나, 신제품 개발의 진전과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즉각적인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한국이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배우고, 거기에 우리의 지식과 지혜를 결합하여 철저하게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구 명예회장은 25년간 LG그룹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연구개발의 해,’ ‘기술선진,’ ‘연구개발 체제 강화,’ ‘선진 수준 기술 개발’ 등 표현은 달라도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기술’을 경영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재임 내내 이어진 구 명예회장의 노력은 연구개발(R&D) 인재를 중시하는 LG 기업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그는 은퇴를 석 달여 앞둔 1994년 11월, 나흘에 걸쳐 전국 각지에 위치한 연구소 19개소를 일일이 찾아 둘러보았다. 그는 훗날 그때 심정을 ‘마음이 흐뭇함으로 가득 찼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