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데스크 시각] 대통령의 침묵은 해법 아니다
지난 8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으로 촉발된 검찰수사가 벌써 4개월을 훌쩍 넘어섰다. 유례없는 국론 분열 속에 조기 매듭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에 대한 감찰무마 의혹,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에 대한 하명수사 의혹 등 권력형 비리로 보이는 사건이 겹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번 수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종착역이 어딜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과잉 수사’ 논란도 나왔지만 현 정부는 피의자가 된 만큼 조기 매듭을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검찰도 갈 데까지 가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권력형 비리는 레임덕 신호탄

이미 정치권에서는 레임덕(임기 말에 나타나는 리더십 약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은 집권 3년차에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연루된 연쇄 대형 스캔들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레임덕의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우리 정치사를 돌아보면 불행하게도 권력형 비리는 일단 발생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특징이 있다. 한 건이 터지면 반드시 비슷한 새로운 사건이 발생해 정국을 더 흔들어 놓는다. 이런 현상이 정권 말까지 지속되곤 했다. 물론 우연이 아니다. 정권의 약점이 드러나면 내부든 외부든 소외됐던 세력의 반격이 시작된다. 검찰과 경찰에 제보가 쏟아지고 이게 다시 수사로 이어지면서 둑이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몰고 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권력형 비리 사건에 민감한 이유도 정권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후폭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번 사태가 조 전 장관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에서 촉발됐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집권 중반기 이후 레임덕의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의 독선적 인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본래 권력자는 능력 있고 신망이 높은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쓰고 싶어 한다. 집권 1~2년 동안 자신감을 얻은 대통령에게 이런 성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인사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또 인사 실패는 그 어떤 정책 실패보다 민심 이반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의혹을 덮으면 민심 못 얻어

레임덕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연히 민심을 잡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리 척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재발을 막는 파격적 조치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대응은 상식적이지 않다. 본질은 ‘비리 의혹’인데 ‘검찰개혁’으로 덮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검찰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여당의 행태, 인사권으로 ‘과잉 수사’를 막겠다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움직임은 민심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청와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식의 근거 없는 아전인수식 답변은 의구심에 부채질만 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로널드 레이건과 버락 오바마는 임기 말까지 레임덕이 없었던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정치평론가들이 꼽은 이들의 공통점은 국민은 물론 야당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긴 ‘소통의 달인’이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역시 취임사에서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또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야 진정한 정치 발전이 가능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침묵은 해법이 아니다. 김학의와 장자연 사건에 대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했던 것처럼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중한 수사를 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의혹을 그대로 둔 채 민심을 얻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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