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지명자가 16일 북한을 향해 “미·북 비핵화 협상의 데드라인은 없다”고 강조했다. 협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도 수차례 강조하며 ‘연말 시한’을 앞두고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 유화적 태도를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 두 번째) 일행을 접견하고 있다.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세 번째)과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네 번째)가 자리를 함께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오른쪽 두 번째) 일행을 접견하고 있다. 앨리슨 후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한반도 보좌관(세 번째)과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네 번째)가 자리를 함께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미·북, 연말 시한 앞두고 공 떠넘겨

비건 지명자는 이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위대한 잠재력을 미국도 잘 알고 있으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도발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의지만 있다면 더 나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직설화법을 공개 석상에서 구사하는 건 외교가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른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비건 지명자는 “연말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에겐 1년 중 가장 신성한 날이라고 할 수 있다”며 “연말에 다시 한 번 평화의 결실을 볼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3일 이태성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의 담화를 통해 “연말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느냐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위협했다. 비건 지명자가 이 담화를 되받아친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이 교착 국면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건 지명자의 카운터파트가 될 가능성이 높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의 판문점 접촉이 성사되더라도 큰 성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과 북한의 접촉이 불발될 여지가 큰 게 사실이지만 북한이 비건 지명자의 제안을 전격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다만 그 이유는 미국의 요청에 자신들이 응했다는 점을 내세워 또 다른 명분 싸움에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2017년 같은 강경 노선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미국엔 상당히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으로 추정되는 엔진을 두 차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시험했고, 군 서열 2위인 박정천 인민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의 담화를 내세우며 군부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정부의 신중론…“상황 예의 주시”

우리 정부는 미·북 간 협상 진전 여부와 관련해선 “우리 측에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국이 미·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비건 지명자에게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비건 지명자와 만나 “앞으로도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비건 지명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화답했다.

비건 지명자는 청와대에 앞서 외교부를 방문했다. 해외 출장 중인 강경화 장관을 대신해 조세영 1차관과 면담하고,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회담했다. 이 본부장은 “비건 지명자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미국의 문제 해결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협상 재개 시 북한의 모든 관심사에 대해 깊이있게 논의할 수 있다는 뜻도 재확인했다”고 전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는 서울 모처에서 비공개로 오찬을 했다. 통일부 측은 “김 장관은 북·미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며 “북한과 미국이 판문점에서 접촉할 가능성에 대해선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