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간 해외 도피' 정한근 "자수하려고 했다…부친 뜻도 같아"
도피 21년 만에 붙잡힌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법정에서 "(1998년) 당시 도피는 충동적이었던 것"이라며 체포되지 않아도 자신은 자수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석 부장판사)는 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재산 국외 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정한근 씨에 대한 심문기일을 진행했다.

정씨 측 변호인은 이날 추가 구속 영장 발부 여부를 위한 심문에서 "피고인은 법원에서 선고할 형까지 전부 감내하고 수감되어 있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변호인 입장에서는 범죄가 성립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피고인은 본인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도 없다"며 추가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대해 재판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뜻을 보였다.

한편 정씨는 "지난 6월에 체포되지 않았다면 해외 도피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아니다.

아버지의 유지도 본인이 돌아가시면 저는 한국에 돌아가 자수하라는 것이었다"라며 귀국 전 마지막 주변 정리를 위해 미국으로 가던 중 체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지금은 결과적으로 죄가 됐지만, 도피 당시에는 아버지와 형이 구속되고 저 혼자 감당하기 너무 벅찼던 상황이었다.

충동적으로 그 상황 자체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재산을 의도적으로 해외로 빼돌리기 위해 도피한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정씨는 이날 "아버님이 언젠가 나오시면 제 문제도 해결해주고, 저도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지, 이렇게까지 (도피 생활이) 오래 길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발언 도중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흐느끼기도 했다.

검찰은 "정씨가 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했고 혐의가 가볍지 않은 점을 참작해달라"며 재판부에 정씨의 구속 연장을 요청했다.

정씨는 1997년 11월 한보그룹 자회사인 동아시아가스(EAGC)의 자금 약 322억원을 횡령해 스위스의 비밀 계좌로 빼돌린 혐의와 국세 253억원을 체납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이런 혐의로 1998년 6월 서울중앙지검에서 한차례 조사를 받은 뒤 해외로 도주했다.

정씨는 해외 도피 중이던 부친 정 전 회장의 건강이 나빠지자 에콰도르에 함께 살며 병간호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1일 현지에서 숨졌고, 정씨는 올해 6월 파나마 이민청에 의해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됐다.

검찰은 이날 법정에서 정씨가 EAGC에서 추가로 빼돌린 정황이 밝혀진 66억여원에 대해서도 연내에 추가 기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