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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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보수 체계를 직책과 성과 위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임원 직급을 폐지한 뒤 보수 체계도 이에 맞게 손질하기로 했다. 개인의 창의성을 중시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한국식 연공서열 관행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취지다. 능력·성과가 뛰어나지 않아도 근속연수나 연령이 높으면 더 많은 월급을 주고, 순서대로 승진시키는 문화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기업들의 시각이다.

연공서열이 사라진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내년부터 보수 체계를 직책과 성과 위주로 개편할 계획이다. ‘직급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보수를 다르게 책정할 방침이다. SK그룹의 보수 체계는 연봉과 인센티브보너스(IB·성과급)로 나뉜다. IB는 부문장, 센터장, 그룹장 등 맡은 역할과 성과를 평가해 지급한다. 내년부터 IB의 탄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임금 체계가 바뀌면 이전의 전무급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상무급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평소 “성과가 아니라 연공서열과 직급에 따라 평가받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상황에서 유능한 인재를 잡아두기 위해서라도 성과에 따른 보상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상 체계 개편은 직급 통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K그룹은 지난 8월 상무 전무 부사장 등의 임원 직급을 폐지하고 ‘부사장(vice president)’으로 통일했다. 직급의 틀에 갇혀 있으면 서열을 떠나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신규 임원이 된 이들도 모두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조직원들은 ‘OOO 상무’ ‘OOO 전무’라는 호칭 대신 ‘OOO 팀장’, ‘OOO 그룹장’이라고 부른다. 임원 직급을 통일하면서 기존에는 ‘전무급 보직’이었던 직무에 상무급을 선임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SK, 전무보다 연봉 더 받는 상무 나온다
후배 팀장 아래 선배 팀원

직급 파괴 및 보수 체계 개편은 주요 그룹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임원 승진 연령대가 높았던 LG그룹에서도 연공서열에 따른 승진이 사라지고 있다. LG화학은 석유화학사업본부장 자리를 두고 전무급과 부사장급이 함께 하마평에 올랐다. 인사 결과 석유화학사업의 핵심인 ABS(고부가합성수지)사업과 NCC(나프타분해설비)사업을 두루 경험한 노국래 NCC사업부장(전무)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본부장 자리를 꿰찼다.

주요 계열사 사업본부장급 자리에도 예상을 깨고 연차가 낮은 임원들이 전진배치됐다. LG그룹 관계자는 “사업부서에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시각에서 과감한 도전을 하는 인재들이 필요하다”며 “연차, 직급과 상관없이 적임자에게 주요 보직을 맡긴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34세 여성 상무로 화제를 모은 심미진 LG생활건강 퍼스널케어사업총괄(상무)이 이끄는 조직에는 50대 그룹장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대 상무와 50대 부장이 근무하는 모습이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과거엔 기업들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승진할 자리를 늘렸지만 최근엔 불황기를 맞아 조직 규모를 줄여나가는 추세”라며 “나이, 연공서열과 상관없이 능력, 성과에 따라 승진시키는 문화가 보편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