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3시 36분께 경기도 화성의 한 대학교.
280여 명이 입주해 있는 이 대학 기숙사 3층 여자 화장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는 노후한 세탁기의 전선이 끊어져 발생한 것으로 관할소방서가 추정했다.

다행히 소방점검일이어서 기숙사에 점검 나왔던 교직원들과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50여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휴식을 취하던 학생들이 놀라 대피하느라 소동이 벌어졌고 연기가 3층과 4층에 퍼지면서 일부 학생은 연기를 마시기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화재 공지가 늦게 이뤄지는 등 학교 측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학생은 화재가 발생한 지 몇시간이 지나서야 기숙사 관리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지적했으며 이틀이 지난 뒤에야 학교 측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숙사 2층에 거주하는 A씨는 "운이 좋아 화재를 빨리 진압했지만 자칫하면 200여 명 학우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기숙사 측은 지난 1일 공지문에서 "전산 상 오류로 문자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며 "생활관생 분들에게 공지하지 못하고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OK!제보] "기숙사 불나도 스프링클러 설치는 미적"…안전불감 대학들
화재의 원인이 학교의 안전불감증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세탁기 화재가 충분히 예견됐지만 학교 측이 예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재학생 B씨는 "한 층에 사는 80명이 하나의 세탁기를 공동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기계에 과부하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동안 세탁기를 교체해달라는 요청을 몇번이나 했지만 학교 측은 '돈이 없다'며 회피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은 "전체 시설 노후는 말할 것도 없고 화장실이 종일 막히고 이제는 불도 났다"며 "이게 사람 사는 곳인가.

닭장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화재 초기 진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점도 문제시되고 있다.

B씨는 "지금처럼 노후한 기계를 방치하고 스프링클러조차 설치하지 않는다면 더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강조했다.

A씨도 "화재가 났을 때 스프링클러가 터지지 않아 학생들 사이에서 고장 난 것 아니냐는 의문의 목소리가 있었다"며 "알고 보니 스프링클러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설치조차 돼 있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학생회 관계자는 "기숙사 화재를 계기로 다시 한번 안전점검을 강화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스프링클러 설치에 관해서도 학교 측에 건의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대학 관계자는 "법령에 따라 소방시설을 완비해놓았으며 소방점검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예산 부족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았지만 설치를 위해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학생이 거주하는 기숙사 안전에 무감각하다는 지적은 다른 대학에서도 나왔다.

강원도 춘천시에 위치한 한 대학교 생활관 관계자 C씨는 학교 측이 전기 관련 자격증이 필요한 기숙사 시설 수리를 무자격자에게 시켰다고 지적했다.

C씨는 "전기 안정기와 컨버터 등을 교체하는 것은 전기 관련 자격증이 필요한데 무자격자가 관례처럼 해오고 있다"며 "업무분장을 요청했지만 휴대전화로 '관련 업무를 하지 말라'고 공지할 뿐이어서 무자격자의 수리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숙사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목했다.

학생 수백명이 생활하는 기숙사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도 기숙사 규모가 법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정도로 크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공하성 교수는 "기숙사는 숙박시설로, 심야에 화재가 발생하면 다수 인명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다수 피해자가 생길 우려가 있는 장소에는 면적이나 건축일과 관계없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강혜성 서울지부장은 "아무리 대비해도 화재 발생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스프링클러가 당연히 설치돼야 한다"며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학교, 기숙사 등 시설에는 설치 대상을 확대하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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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