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 잘 즐기고 간다"…'30년 바둑인생' 마침표 찍은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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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 AI 바둑 한돌과
1승2패로 대회 마감
1승2패로 대회 마감
“한판 잘 즐기고 간다.”
이세돌(36·사진)이 지난 30년간의 바둑 인생을 정리했다. 화려했던 이력만큼 그의 마지막도 화끈했고 처연했다.
이세돌은 지난 21일 자신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증도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열린 NHN 인공지능(AI) 바둑 한돌과의 최종 3국에서 181수 만에 돌을 던졌다. 그는 1국에서 2점을 깔고 두는 접바둑으로 승리한 뒤 호선(맞바둑)으로 둔 2국에서 패했다. 다시 2점 깔고 접바둑을 둔 이날 패하면서 합계 1승 2패를 기록, AI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대국료 1억5000만원과 승리 수당 5000만원은 그의 마지막 대국 상금이 됐다.
여섯 살 무렵 바둑에 입문한 이세돌은 한국 바둑이 낳은 최고의 스타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생각보다 독보적이지 않다. 1995년 12세4개월 만에 프로로 입단했을 때 당시 국내 최연소 3위(현 5위)였다. 우승 기록은 조훈현과 이창호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의 인기는 다른 기사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창의성과 공격적인 기풍 덕분이었다는 게 바둑계의 시선이다. 한 바둑인은 “이세돌 같은 프로 기사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압도적인 실력까지 겸비한 이세돌에겐 ‘때’와 ‘운’까지 항상 절묘하게 따랐다. 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고 회상했다.
김효정 K바둑 이사(프로 3단)는 “이세돌은 너무 천재여서 프로기사들도 스타처럼 바라보던 기사였다”며 아쉬워했다. 이세돌이 사사한 권갑용 8단은 “그의 바둑에서 종종 살기가 느껴졌다. 모두가 끝났다고 한 판세를 뒤집는 믿기지 않는 대역전극을 이세돌은 수없이 연출했다”고 말했다. 흑을 잡고 둔 지난 1국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또다시 78수로 한돌의 허를 찔렀다. 78수는 3년 전 그가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를 제4국에서 무너뜨릴 때 뒀던 ‘신의 한 수’. 같은 78수로 AI를 무너뜨릴 확률을 따지는 것은 시도조차 무의미하다. 이세돌은 “프로 기사라면 누구나 그렇게 둘 당연한 수”라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이번 최종 3국은 왜 그가 스타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 한 판이었다. 탄탄대로를 거부하며 30년간 자신의 길을 고집한 이세돌의 기풍은 이번 최종 3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2점 접바둑으로 치른 1국에서 승리를 거둔 ‘수비 바둑’을 고수했다면 그의 승률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이세돌은 “마지막이니만큼 이세돌답게 두겠다”며 “1국은 이기기 위한 바둑을 뒀지만 3국에선 나만의 (공격적인) 바둑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이세돌은 다짐한 대로 경기 초반부터 공격적인 기풍을 유지했다. 시작과 함께 우하귀에 파고들어 불꽃 튀는 수 싸움을 벌였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대마를 살렸으나 상당한 집 손해를 봤고 90여 수쯤에는 승률 그래프가 한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역전을 허용했지만 이세돌은 상변에서도 특유의 ‘흔들기’로 싸움을 걸었다. 돌을 던지기 전까지 끝까지 싸우는 모습은 바둑 팬들이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됐다.
이세돌은 “초반과 중반까지는 괜찮았는데, 예상 못한 수를 당해 많이 흔들렸다”며 “저는 부족했지만 좋은 후배들이었다면 한돌을 이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은퇴 후 계획에 대해서 그는 “전체적인 그림을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정리가 덜 됐다”고 말을 아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이세돌(36·사진)이 지난 30년간의 바둑 인생을 정리했다. 화려했던 이력만큼 그의 마지막도 화끈했고 처연했다.
이세돌은 지난 21일 자신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증도 엘도라도 리조트에서 열린 NHN 인공지능(AI) 바둑 한돌과의 최종 3국에서 181수 만에 돌을 던졌다. 그는 1국에서 2점을 깔고 두는 접바둑으로 승리한 뒤 호선(맞바둑)으로 둔 2국에서 패했다. 다시 2점 깔고 접바둑을 둔 이날 패하면서 합계 1승 2패를 기록, AI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대국료 1억5000만원과 승리 수당 5000만원은 그의 마지막 대국 상금이 됐다.
여섯 살 무렵 바둑에 입문한 이세돌은 한국 바둑이 낳은 최고의 스타다. 하지만 그의 기록은 생각보다 독보적이지 않다. 1995년 12세4개월 만에 프로로 입단했을 때 당시 국내 최연소 3위(현 5위)였다. 우승 기록은 조훈현과 이창호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의 인기는 다른 기사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창의성과 공격적인 기풍 덕분이었다는 게 바둑계의 시선이다. 한 바둑인은 “이세돌 같은 프로 기사는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압도적인 실력까지 겸비한 이세돌에겐 ‘때’와 ‘운’까지 항상 절묘하게 따랐다. 이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고 회상했다.
김효정 K바둑 이사(프로 3단)는 “이세돌은 너무 천재여서 프로기사들도 스타처럼 바라보던 기사였다”며 아쉬워했다. 이세돌이 사사한 권갑용 8단은 “그의 바둑에서 종종 살기가 느껴졌다. 모두가 끝났다고 한 판세를 뒤집는 믿기지 않는 대역전극을 이세돌은 수없이 연출했다”고 말했다. 흑을 잡고 둔 지난 1국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또다시 78수로 한돌의 허를 찔렀다. 78수는 3년 전 그가 구글의 바둑 AI 알파고를 제4국에서 무너뜨릴 때 뒀던 ‘신의 한 수’. 같은 78수로 AI를 무너뜨릴 확률을 따지는 것은 시도조차 무의미하다. 이세돌은 “프로 기사라면 누구나 그렇게 둘 당연한 수”라고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이번 최종 3국은 왜 그가 스타일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 한 판이었다. 탄탄대로를 거부하며 30년간 자신의 길을 고집한 이세돌의 기풍은 이번 최종 3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2점 접바둑으로 치른 1국에서 승리를 거둔 ‘수비 바둑’을 고수했다면 그의 승률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이세돌은 “마지막이니만큼 이세돌답게 두겠다”며 “1국은 이기기 위한 바둑을 뒀지만 3국에선 나만의 (공격적인) 바둑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이세돌은 다짐한 대로 경기 초반부터 공격적인 기풍을 유지했다. 시작과 함께 우하귀에 파고들어 불꽃 튀는 수 싸움을 벌였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대마를 살렸으나 상당한 집 손해를 봤고 90여 수쯤에는 승률 그래프가 한돌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역전을 허용했지만 이세돌은 상변에서도 특유의 ‘흔들기’로 싸움을 걸었다. 돌을 던지기 전까지 끝까지 싸우는 모습은 바둑 팬들이 그를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됐다.
이세돌은 “초반과 중반까지는 괜찮았는데, 예상 못한 수를 당해 많이 흔들렸다”며 “저는 부족했지만 좋은 후배들이었다면 한돌을 이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은퇴 후 계획에 대해서 그는 “전체적인 그림을 말씀드리기에는 아직 정리가 덜 됐다”고 말을 아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