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 100일…전국 확산 막은 숨은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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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 신고한 첫 농가
촘촘히 연결된 수의사
희생 감수한 농가
촘촘히 연결된 수의사
희생 감수한 농가
25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국내에 발병한 지 100일이 됐다. 그동안 정부와 전국 농가는 ‘돼지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역에 전력을 쏟았다. 경기 북부에는 사실상 사육 돼지의 씨가 말랐다. 예방을 위해 살처분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ASF 확산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지난 10월 8일을 끝으로 추가로 감염된 농장 돼지는 없다. 세계 축산업계는 한국이 아시아 최초의 방역 성공 국가가 될 것인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처럼 ‘1차 방어’에 성공한 것은 정부의 발빠른 대응 외에 숨은 공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용기 있게 신고하고 희생을 감수한 농가, ASF를 미리 준비한 수의사 등이다.
‘골든 타임’ 지킨 1호 발병 농가
ASF는 지난 9월 중순 경기 파주시 교하읍 한 농가에서 처음 발병했다. 25년간 돼지를 키워온 곳이다. 채정우 대표와 그의 아들 채수용 대표는 그날농장, 수향농장, 동문농장 등 세 곳의 농장에서 약 5000마리를 사육했다. 이 농장은 모범 농장으로도 꼽혔다. 유럽에서 배운 선진 기술로 ‘돼지 운동장’을 실험하고, 무항생제 돼지 사육 등도 연구했다.
지난 9월 16일 아침 농장 문을 연 채씨 부자는 쓰러져 있는 돼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분신과도 같은 돼지들을 모조리 살처분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방역당국에 신고했다. 채수용 대표는 “100% ASF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신고가 늦으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망설이지 않고 신고했다”고 말했다. ASF 확산을 막은 결정적 신고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고를 제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설사병 등으로 자주 아프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발병 후 2개월이 지나서야 첫 신고가 이뤄졌다. 양돈업계 관계자는 “첫 농가가 신고하자 주변 농가들도 잇따라 의심 신고를 했다. 대형 농장의 첫 번째 신고가 급속한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양돈 전문가들, 비상체계 가동
한국양돈수의사회 등 국내 양돈 전문가들도 빼놓을 수 없는 ‘ASF 전투’의 공신들이다. 이들은 2년 전부터 ASF 발병에 대비했다.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전국 돼지 농가의 실시간 질병 현황을 점검했다. 책에서 보던 것과 다른 현장의 이야기를 ‘돼지와사람’ 등의 전문 미디어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24시간 공유했다.
발병 후 이들은 축산농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했다. 한국양돈수의사회의 해외악성전염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일 수의사(옵티팜 대표)는 ASF 발병 직후 ‘ASF에 감염되면 왜 비장이 그렇게 커지나’ ‘왜 돼지를 100% 가까이 죽이는 걸까’ 등 의문점을 전국 농가에 알려 병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확진 농가가 추가될 때마다 각 농가의 증상과 이상 현상 등을 알려 괴담이나 불안감이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 ‘돼지와사람’을 운영하는 이득흔 수의사는 해외 ASF 발병 실시간 현황판을 만들고, 발병 지도와 속보, 전문가 인터뷰 등을 띄워 주요 정보 창구 역할을 했다.
이런 채널을 통한 제보도 이어졌다. 중국 ASF 발병 현장에서 돼지 부검 장면을 상세히 영상으로 녹화해 전달하면서 수의사들에게 바이러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알려졌다.
세계 축산업계, 한국 조치 예의주시
파주 김포 강화 연천 철원 등에서 살처분·매몰되거나 정부가 수매한 돼지는 44만6520마리다. 261곳 농가가 예방을 위한 살처분과 매몰, 정부의 수매에 동참했다. 정부와 보상에 관해 합의하지 않았지만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희생했다.
이들은 ASF가 왜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치사율이 100%일 뿐 아니라 잘 죽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한 번 발병한 땅에선 다시 돼지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예방적 살처분에 동의했다.
예상대로 이들 농가는 어려움에 처했다. 파주의 한 농가 대표는 “20억원 이상 대출받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폭락한 돼지 가격을 기준으로 받는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만으로는 재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국비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등 ASF 지원금 655억원을 추가 집행하기로 하고, 축산대출자금 상환기간 연장 등의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이들이 느끼는 더 큰 불안은 지금도 ASF에 걸린 멧돼지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가와 전문가들은 방심하지 말고 더 철저하게 방역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가들은 자신의 돼지를 희생해 양돈산업을 살린 셈이다. 양돈산업은 사료회사, 도축장, 육가공 등 32조원 규모가 넘는다. 관련 일자리는 42만 개에 달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ASF는 지난 9월 중순 경기 파주시 교하읍 한 농가에서 처음 발병했다. 25년간 돼지를 키워온 곳이다. 채정우 대표와 그의 아들 채수용 대표는 그날농장, 수향농장, 동문농장 등 세 곳의 농장에서 약 5000마리를 사육했다. 이 농장은 모범 농장으로도 꼽혔다. 유럽에서 배운 선진 기술로 ‘돼지 운동장’을 실험하고, 무항생제 돼지 사육 등도 연구했다.
지난 9월 16일 아침 농장 문을 연 채씨 부자는 쓰러져 있는 돼지를 발견했다. 그들은 분신과도 같은 돼지들을 모조리 살처분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방역당국에 신고했다. 채수용 대표는 “100% ASF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신고가 늦으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망설이지 않고 신고했다”고 말했다. ASF 확산을 막은 결정적 신고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고를 제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장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설사병 등으로 자주 아프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발병 후 2개월이 지나서야 첫 신고가 이뤄졌다. 양돈업계 관계자는 “첫 농가가 신고하자 주변 농가들도 잇따라 의심 신고를 했다. 대형 농장의 첫 번째 신고가 급속한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양돈 전문가들, 비상체계 가동
한국양돈수의사회 등 국내 양돈 전문가들도 빼놓을 수 없는 ‘ASF 전투’의 공신들이다. 이들은 2년 전부터 ASF 발병에 대비했다.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전국 돼지 농가의 실시간 질병 현황을 점검했다. 책에서 보던 것과 다른 현장의 이야기를 ‘돼지와사람’ 등의 전문 미디어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24시간 공유했다.
발병 후 이들은 축산농가가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가이드 역할을 했다. 한국양돈수의사회의 해외악성전염병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일 수의사(옵티팜 대표)는 ASF 발병 직후 ‘ASF에 감염되면 왜 비장이 그렇게 커지나’ ‘왜 돼지를 100% 가까이 죽이는 걸까’ 등 의문점을 전국 농가에 알려 병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확진 농가가 추가될 때마다 각 농가의 증상과 이상 현상 등을 알려 괴담이나 불안감이 확산하는 것을 막았다. ‘돼지와사람’을 운영하는 이득흔 수의사는 해외 ASF 발병 실시간 현황판을 만들고, 발병 지도와 속보, 전문가 인터뷰 등을 띄워 주요 정보 창구 역할을 했다.
이런 채널을 통한 제보도 이어졌다. 중국 ASF 발병 현장에서 돼지 부검 장면을 상세히 영상으로 녹화해 전달하면서 수의사들에게 바이러스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가 알려졌다.
세계 축산업계, 한국 조치 예의주시
파주 김포 강화 연천 철원 등에서 살처분·매몰되거나 정부가 수매한 돼지는 44만6520마리다. 261곳 농가가 예방을 위한 살처분과 매몰, 정부의 수매에 동참했다. 정부와 보상에 관해 합의하지 않았지만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희생했다.
이들은 ASF가 왜 무서운지 알고 있었다. 치사율이 100%일 뿐 아니라 잘 죽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한 번 발병한 땅에선 다시 돼지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예방적 살처분에 동의했다.
예상대로 이들 농가는 어려움에 처했다. 파주의 한 농가 대표는 “20억원 이상 대출받아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폭락한 돼지 가격을 기준으로 받는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만으로는 재기가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17일 국비와 지방자치단체 예산 등 ASF 지원금 655억원을 추가 집행하기로 하고, 축산대출자금 상환기간 연장 등의 대책을 논의 중이다. 이들이 느끼는 더 큰 불안은 지금도 ASF에 걸린 멧돼지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농가와 전문가들은 방심하지 말고 더 철저하게 방역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가들은 자신의 돼지를 희생해 양돈산업을 살린 셈이다. 양돈산업은 사료회사, 도축장, 육가공 등 32조원 규모가 넘는다. 관련 일자리는 42만 개에 달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