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나고 배고팠던 시골뜨기였다…이제 더 많은 국민께 책임 다해야"
"열린우리당 가지 않아 지금까지 소수파…정치인으로 약점"
"정당과 국회에도 혁신 필요…소신발언 필요하다면 하겠다"


한일 관계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지난 10월 18일 일본 도쿄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관저에 선물이 도착했다.

검은색 옻칠을 한 오동나무 상자 안에는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생산한 프리미엄 막걸리 6병이 담겨 있었다.

나흘 뒤인 10월 22일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일본을 방문하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아베 총리에게 미리 보낸 선물이었다.

아베 총리에게 보낸 막걸리 선물은 정책의 '디테일'을 중시하는 이 총리의 면모가 드러난 단적인 사례다.

막걸리 선물 아이디어부터 막걸리 종류 선정, 상자 포장 방식까지 모두 이 총리가 기획했다.

애초 제품에는 들어있지 않던 막걸리 설명서까지 한국어와 일본어 버전으로 이 총리가 작성에 참여해 상자 안에 넣었다.

아베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얼어붙은 양국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고민 끝에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이 총리는 당시 회담(10월 24일)에서 아베 총리와 '양국 관계를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고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도 전달했다.

한일정상회담은 이로부터 두 달 뒤인 지난 24일 개최됐다.

국무위원들에게 정책의 실행력과 디테일을 강조하면서 '내각의 군기반장'으로 불렸던 이 총리가 여의도 복귀를 앞두고 있다.

16∼19대 국회에 몸담았던 그가 여의도로 돌아가는 것은 5년여만이다.

그 사이 전남지사 2년 11개월, 총리 2년 7개월을 역임하며 정책 현장의 경험을 쌓았다.

총리로 재임하며 비교적 안정감 있는 국정 운영, 절제된 발언과 태도 등이 대중의 호평을 받았고 현재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최장수 총리'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이 총리는 26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재개를 앞둔 각오를 밝혔다.

이 총리는 '그동안 국무총리 이낙연을 움직인 원동력, 앞으로 정치인 이낙연을 움직이게 할 원동력이 무엇이냐'는 두 질문에 모두 "책임감"이라고 답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장기부터 일관되게 제 몸속에, 핏속에 흐르는 게 책임의식 같은 거였다고 생각된다"며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장남으로서 고등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이제는 더 많은 국민께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21년, 4선 국회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커리어 상 '공백'이 없는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그러나 유년 시절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고충이 적지 않았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입주 가정 교사를 했고 2학년 때는 묵을 곳이 없어 지인이 운영하는 광화문 사설 독서실에서 의자를 붙여 쪽잠을 자며 생활했다.

배고픈 청년기를 보낸 이 총리는 "상체를 벗었을 때 갈비뼈가 보이지 않은 것은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할 때가 처음이었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이 총리는 인터뷰에서 "저는 몹시 못나고 배고팠던 시골뜨기였다.

지금도 옛적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곤 한다"며 "그러나 저는 행운이 많은 사람이다.

누군가가 나타나 도와주는 일이 계속 반복되는 인생이었다.

제가 굶던 시절에 저에게 밥을 주신 수많은 분을 지금도 고맙게 기억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경험은 이 총리가 본인 스스로와 공직자들에게 낮은 자세를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정세균 후임 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 절차가 남아있지만, 이 총리의 더불어민주당 복귀와 내년 총선 역할론은 정치권에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 총리는 당이 요청할 경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의 빅매치나 험지 출마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전남지사·국무총리를 지내기 전과 그 이후의 정치 활동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정책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고뇌 끝에 이뤄지는지, 그 정책이 수행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실패 가능성이 어디어디에 잠재돼 있는지 등을 알게 된 사람으로서 이전과는 당연히 처신이 달라질 것"이라며 "더 책임감 있고, 무겁게 하겠다"고 밝혔다.

자기 세력이 적다는 것은 이 총리의 단점이자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정치인 이낙연'의 장·단점을 묻자 그는 "장점이라면 서민들의 삶이나 사회 문제의 현장을 조금 더 알고, 말과 글을 다듬는 편이라는 정도일까요?"라며 "단점이라기보다 약점은 다수정당(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소수정당(민주당)에 남았더니 지금까지도 소수파인 것, 정치인들과 뭉쳐 다니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에 복귀하면 '이낙연계'를 만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저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미래의 지도자상에 대해 "국내에만 너무 묶여 있는, 그것도 자기 편에만 묶여 있는 사람은 자기편 지도자는 될지 몰라도 국가 지도자가 되려면 좀 더 나아져야 한다"고 밝혔다.

세력화 그 자체보다 더 큰 차원의 정책 역량과 지도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치 2막을 여는 이 총리의 첫 번째 분수령은 내년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느냐다.

대선까지 가기 위해선 총선과 그 이후 과정에서 뜻을 함께할 사람들을 확보하는 일, 총리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일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정부·여당의 잘못된 행태가 있다면 소신 발언을 할 각오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 혁신이 필요한 것처럼 정당과 국회에도 혁신이 필요하다"며 "제가 할 수 있고 정치계에 필요한 일은 뭐든지 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