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환송심서 200만∼500만원 배상…"불온서적 지정, 표현의자유 침해"
'불온서적' 지정된 출판사·저자, 소송 11년 만에 국가배상
국방부로부터 불온서적이라는 낙인이 찍힌 책을 출간한 회사와 저자들이 소송을 낸 지 11년 만에 국가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았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8부(설범식 이재욱 김길량 부장판사)는 후마니타스, 보리 등 출판사와 홍세화, 김진숙 씨 등 저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관련 서적들은 불온서적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이 중 일부는 양질의 교양·학술 도서로 평가받는다"며 "충분한 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군대 내 반입을 금지한 부분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불온서적' 지정은 대상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만한 내용이므로, 저자 내지 출판업자들의 외적 명예를 침해한 위법 행위"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핵과 한반도' 등 3권은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북한 주장에 동조하며 이를 선동하는 내용을 담았다"며 불온서적 지정이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원고들은 2008년 국방부가 허영철의 '역사는 한번도 나를 비껴가지 않았다'(보리), 한홍구의 '대한민국사'(한겨레출판사), 김진숙의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등 23개 서적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데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국방부가 원고들의 언론·출판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했고, 글을 집필한 저자와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1, 2심은 "불온서적 지정이 원고들의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제한했다거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고, 명예훼손 또는 모욕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국방부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책들은 국가 존립 안전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해치는 책으로 볼 수 없고, 오히려 사회 일반에서 양질의 교양 도서로 받아들여지는 책들이 포함돼 있다"며 "국방부 장관이 불온 도서에 해당하지 않은 서적들까지 일괄해 '불온도서'로 지정한 조치는 위법한 국가 작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이 서적 중 불온서적에 해당하지 않은 서적이 있는지, 불온서적으로 지정됨으로써 명예가 침해됐는지 등을 심리한 후 그로 인한 국가배상 책임이 성립하는지를 가려봤어야 했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판결에 따라 국가가 출판사와 저자 일부에게 각 200만∼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