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자동차 산업이 연 400만대 생산·180만대 내수 규모 붕괴 위기를 맞았다. 사진은 판매를 위해 준비 중인 완성차 모습. 사진=연합뉴스
올해 국내 자동차 산업이 연 400만대 생산·180만대 내수 규모 붕괴 위기를 맞았다. 사진은 판매를 위해 준비 중인 완성차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속된 경기 부진 탓에 올해 국내 자동차 산업은 생태계 붕괴가 현실화했다. 연 생산량 400만대, 내수 판매량 180만대가 동시에 무너지고 중견 완성차 업체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빈익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27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집계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국내 자동차 생산량은 361만3077대를 기록하며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6% 줄었다. 연 생산량 400만대를 넘기려면 이달 38만6000여대를 생산해야 하는데, 11월까지 월 평균 생산량이 32만8400대에 그치기에 올해는 '400만대' 유지가 불가능 할 전망이다. 더욱이 연식변경을 앞둔 12월은 전통적 비수기이고 기아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에서 노조 파업도 발생해 생산량이 지난 달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다.

연 400만대 생산은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완성차 뿐 아니라 부품업체 등 협력사들이 현 규모를 유지하려면 매년 400만대는 생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10년 만에 생산량이 400만대 아래로 내려가며 국내 자동차 산업은 뿌리부터 잘려나갈 처지가 됐다.

자동차 생산 감소로 인한 부품업체들의 타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자동차 1차 협력사 800여곳 매출액은 2014년 78조1185억원에서 지난해 71조4423억원으로 약 7조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3.4%에서 1.9%로 줄어들었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인건비마저 크게 오르며 지난해 1차 협력사 가운데 38곳이 문을 닫거나 납품을 중단했다. 그나마 새로 18곳이 생기며 20곳 순감에 그쳤는데, 업계는 올해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자동차가 조립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자동차가 조립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수 판매량도 감소 추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와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신차는 160만8271대로 작년 같은 기간 165만3187대에 비해 2.8% 줄었다. 국산차는 139만3563대, 수입차는 21만4708대에 그쳤고 월 평균 판매 대수는 14만6206대 수준이다. 비수기인 12월에 월 평균 판매량을 달성한다 가정하더라도 올해 내수 시장 규모는 175만~176만대 수준이 될 전망이다. 개정소비세 인하로 2018년 회복한 내수 시장 180만대 선을 다시 내어주게 된 셈이다.

경기 부진에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판매량이 줄어들자 중견 완성차 업체들이 타격을 입었다. 현대차기아차는 전체적으로 작년 수준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올해 11월까지 국내시장에서 현대차는 작년 대비 2.9% 늘어난 67만5507대를 팔았고 기아차는 3.8% 감소한 47만1075대를 판매했다. 르노삼성은 3.4% 감소한 7만6879대, 쌍용차는 1.3% 줄어든 9만7215대, 한국GM은 18.4% 쪼그라든 6만7651대 판매를 기록했다.

르노삼성 쌍용차 한국GM 등 중견 3사 판매량 동시에 줄면서 현대와 기아차, 현대차그룹의 시장 점유율은 80%를 넘었다. 국내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현대차가 49%, 기아차가 33.7%로 양사를 합쳐 82.7%를 기록했고 중견 3사는 쌍용차 7%, 르노삼성 5.5%, 한국GM 4.8% 순이었다.

가뜩이나 판매량이 적은 업체들의 판매량이 더 줄어드는 '빈익빈' 현상이 발생한 것. 이는 중견 3사 매출 감소와 투자비 축소, 추가적인 경쟁력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적으로 지난해 현대차의 연구개발(R&D) 비용은 2조7564억원이었는데, 쌍용차의 R&D 비용은 2017억원에 그쳤다. R&D 예산이 10%도 되지 않으니 신차를 꾸준히 선보이기 어려워 단일 차종에 의존하게 된다.

쌍용차는 티볼리와 렉스턴, 르노삼성은 QM6, 한국GM은 스파크에 매출을 의존한다. 내년 국내서 생산해 선보이는 신차도 르노삼성 XM3, 한국GM 트레일블레이저로 제한됐다. 그나마 쌍용차는 아직까지 확정된 내년 신차가 없는 상황이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르노삼성자동차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차량이 생산되고 있다. 사진=르노삼성자동차
쌍용차를 제외한 르노삼성과 한국GM은 글로벌 본사 차량을 수입해 신차 공백을 메운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다. 수입차는 추가적인 유통 단계를 거치기에 국산차에 비해 가격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격을 높이면 차량이 팔리지 않는다. 국내 소비자들이 중견 3사 브랜드를 국산차로 인식하는 탓이다.

해외 본사 차량을 수입해 판매하면 국내 소비자 시각에서는 '과하게 비싼 국산차'가 되어 외면받는 셈이다. 때문에 차량을 수입하더라도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 어렵다. 실제 한국GM은 미국에서 트래버스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면서 현지보다 판매가를 500만~1000만원 낮게 책정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서 수입했더라도 국내 소비자들이 르노삼성, 한국GM 등의 브랜드를 국산차로 인식하고 있어 다른 수입차 브랜드처럼 높은 가격을 책정하면 반발이 심하다"며 "가격을 최대한 낮춰 판매하는 탓에 수입 대형 SUV 마진이 경차 마진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GM이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가입한 것과 르노삼성이 삼성을 빼고 르노 브랜드로 자립하려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