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국민연금에 경영 개입 '칼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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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권 행사지침 강행 처리
정관 변경·이사 해임 요구까지
노동·시민단체 입김 가능해져
경영계 "극히 유감" 강력반발
정관 변경·이사 해임 요구까지
노동·시민단체 입김 가능해져
경영계 "극히 유감" 강력반발
정부가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이사 해임, 정관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지침)’을 강행 처리했다.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모호한 규정을 담아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무소불위식으로 간섭할 빌미를 줄 것이란 경영계 우려에 의결을 연기한 지 한 달 만이다.
보건복지부는 27일 국민연금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지침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기금위는 경영계를 대변하는 기금위원 3명 중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소속 위원이 항의 표시로 불참하는 등 20명의 구성원 중 13명만 참석한 채 열렸다. 또 다른 경영계인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위원도 지침 의결을 앞두고 회의장을 나갔다. 의결은 남은 12명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이번 지침은 국민연금이 부실한 배당정책, 배임·횡령 등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했거나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이 발생해 투자기업의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할 경우 이사 해임이나 정관 변경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경영계는 정부와 노동·시민단체가 기업 경영에 개입할 길이 열리게 됐다며 반발했다. 경총은 “기업 경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국민연금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깜깜이 지침'으로 이사해임까지…국민연금 '거대 행동주의펀드' 되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 국민연금이 기업 이사 해임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지침)’을 통과시키면서 “원칙과 기준, 절차를 투명하게 규정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곳곳에 모호하고 추상적인 조항이 무더기로 담겨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입맛대로 이사 해임,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거대 행동주의 펀드로 변신하고 있다”고 했다. 경영 개입 대상 ‘국민연금 입맛대로’
박 장관 말대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경영 개입 대상 기업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어떤 주주제안을 할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이번 지침은 구체성 측면에선 낙제점”이라는 게 경영계의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배당부실, 임원 보수 과다, 횡령·부당지원 등 법령 위반, 지속적 반대의결권 행사를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하고 단계별 경영 개입(비공개 대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중점관리기업 공개,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부실한 배당이나 과도한 임원 보수에 대한 기준은 없다. 배당정책의 합리성·투명성·구체성, 이사 보수 한도의 실지급액 대비 과도함 등 추상적 표현만 제시됐다.
지침은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엔 중간 단계 없이 곧바로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역시 어떤 상태가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주주권익이 침해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지 심각성, 재발 가능성, 자산 노출도, 중대성 등을 감안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단어들만 즐비하다.
달랑 한 줄로 이사 해임까지 가능
주주제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복지부는 지난달 공청회에서 지침 초안을 공개하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하는 사례 30개가량을 예로 들었다. 공개 후 ‘상법 등 상위법령과 정면충돌하거나 제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종안에선 예시를 전면 삭제했다.
대신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적절한 주주제안 등을 추진’이라고 달랑 한 줄로 간소화했다.
이 한 줄을 근거로 국민연금은 이사 해임, 이사·감사 선임, 집중투표제 강제 도입 등 정관 변경을 기업에 강요할 수 있게 됐다. 한 상장 대기업 임원은 “이번 지침을 보면 예측 가능성이 아니라 의문만 생긴다”고 했다.
가이드라인 ‘고무줄 적용’ 불가피
경영계는 이날 지침이 통과되자 일제히 반발했다. “모호한 잣대를 대거 담은 깜깜이 지침을 통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원하는 대로 민간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정부나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 변화에 따라 지침이 고무줄처럼 들쭉날쭉 적용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경영단체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외국계 펀드 등과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는 방식으로 특정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재벌개혁의 칼로 쓰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우려된다”고도 했다.
황정환/이상열 기자 jung@hankyung.com
보건복지부는 27일 국민연금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과 범위, 절차 등을 규정한 지침을 의결했다. 국민연금의 경영 참여를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 기금위는 경영계를 대변하는 기금위원 3명 중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소속 위원이 항의 표시로 불참하는 등 20명의 구성원 중 13명만 참석한 채 열렸다. 또 다른 경영계인 대한상공회의소 추천 위원도 지침 의결을 앞두고 회의장을 나갔다. 의결은 남은 12명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이번 지침은 국민연금이 부실한 배당정책, 배임·횡령 등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했거나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이 발생해 투자기업의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할 경우 이사 해임이나 정관 변경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경영계는 정부와 노동·시민단체가 기업 경영에 개입할 길이 열리게 됐다며 반발했다. 경총은 “기업 경영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역시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국민연금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깜깜이 지침'으로 이사해임까지…국민연금 '거대 행동주의펀드' 되나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7일 국민연금이 기업 이사 해임 등을 추진할 수 있는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지침)’을 통과시키면서 “원칙과 기준, 절차를 투명하게 규정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영계는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곳곳에 모호하고 추상적인 조항이 무더기로 담겨 있어서다. 국민연금이 입맛대로 이사 해임, 집중투표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거대 행동주의 펀드로 변신하고 있다”고 했다. 경영 개입 대상 ‘국민연금 입맛대로’
박 장관 말대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경영 개입 대상 기업을 어떻게 선정하는지, 어떤 주주제안을 할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하지만 “이번 지침은 구체성 측면에선 낙제점”이라는 게 경영계의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배당부실, 임원 보수 과다, 횡령·부당지원 등 법령 위반, 지속적 반대의결권 행사를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하고 단계별 경영 개입(비공개 대화, 비공개 중점관리기업 선정, 중점관리기업 공개,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부실한 배당이나 과도한 임원 보수에 대한 기준은 없다. 배당정책의 합리성·투명성·구체성, 이사 보수 한도의 실지급액 대비 과도함 등 추상적 표현만 제시됐다.
지침은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엔 중간 단계 없이 곧바로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역시 어떤 상태가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주주권익이 침해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지 심각성, 재발 가능성, 자산 노출도, 중대성 등을 감안하겠다는 ‘뜬구름 잡는’ 단어들만 즐비하다.
달랑 한 줄로 이사 해임까지 가능
주주제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들여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복지부는 지난달 공청회에서 지침 초안을 공개하고 국민연금이 주주제안을 하는 사례 30개가량을 예로 들었다. 공개 후 ‘상법 등 상위법령과 정면충돌하거나 제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종안에선 예시를 전면 삭제했다.
대신 ‘상법 및 자본시장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적절한 주주제안 등을 추진’이라고 달랑 한 줄로 간소화했다.
이 한 줄을 근거로 국민연금은 이사 해임, 이사·감사 선임, 집중투표제 강제 도입 등 정관 변경을 기업에 강요할 수 있게 됐다. 한 상장 대기업 임원은 “이번 지침을 보면 예측 가능성이 아니라 의문만 생긴다”고 했다.
가이드라인 ‘고무줄 적용’ 불가피
경영계는 이날 지침이 통과되자 일제히 반발했다. “모호한 잣대를 대거 담은 깜깜이 지침을 통해 정부와 국민연금이 원하는 대로 민간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정부나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원들의 정치적 성향 변화에 따라 지침이 고무줄처럼 들쭉날쭉 적용되면서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경영단체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외국계 펀드 등과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는 방식으로 특정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재벌개혁의 칼로 쓰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우려된다”고도 했다.
황정환/이상열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