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끝내라"는 적법, 방식 지시하면 불법?…헷갈리는 파견지침에 산업현장 혼란 불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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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12년만에 파견판단 지침
'상당한·실질적'…모호한 기준 많아
현장 감독관 '자의적 판단' 우려
'상당한·실질적'…모호한 기준 많아
현장 감독관 '자의적 판단' 우려
앞으로는 제조업에서 전문성이 없는 업무를 하청 주거나 협력사 직원들에게 간접적으로 지휘·명령만 해도 불법파견으로 간주된다. 지금까지는 적법한 도급계약이었다 하더라도 이제는 불법파견으로 처벌받을 수 있어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자 파견의 판단 기준에 관한 지침’을 30일 전국 지방고용노동관서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이 지침은 현장의 근로감독관들이 기업의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정부가 새 지침을 내놓은 것은 2007년 파견법 개정 이후 12년 만이다.
▶본지 12월 21일자 A1, 4면 참조
도급과 파견은 원청 소속 근로자가 아닌 근로자에게 일을 맡긴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력운용 방식이다. 하지만 도급은 근로자가 고용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지만, 파견은 고용계약은 파견회사(하청)와 맺었지만 업무 지시는 실제 일하는 원청에서 받는다. 즉 법으로 파견을 금지하고 있는 제조업 등에서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하면 불법파견(위장도급)이 된다.
새 지침은 2015년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할 당시 제시된 기준을 그대로 반영했다. 새 지침에 따르면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거나 공동작업 등 하청 근로자가 원청 사업장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으면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판단된다. 또 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노무 관련 권한이 없거나 원청 업무와 구별되는 전문·기술성이 없어도 불법파견으로 처벌된다.
지휘·명령과 관련해 고용부는 하청업체 소속 현장대리인(현장소장)의 업무 지시도 원청의 결정을 전달한 수준이라면 파견이라고 봤다. 다만 원청의 지시라 하더라도 ‘노무 제공 방식’에 대한 지시가 아니라 ‘일의 완성’에 관련된 지시는 파견의 근거가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빨리 끝내주세요’는 적법이고, ‘이 방식으로 마무리하세요’는 불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고용부는 새 지침을 적용하더라도 불법파견 적발 사례가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견과 도급을 구분해왔다”며 “또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을 분석해 파견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비상이 걸렸다. 파견과 도급을 현장에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은 ‘상당한 지휘·명령’과 ‘원청사업으로의 실질적 편입’ 등 추상적인 개념이 새 지침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업무 지시가 도급과 파견을 가르는지, 허용되는 공동작업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한 현장 근로감독관들의 판단이 기업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법원에서도 판단이 엇갈리는 ‘편입’이라는 불분명한 개념을 사업장 감독에 활용되는 행정지침에 넣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현장 감독관들이 비정규직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가급적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는 행정편의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에서 오래전부터 불법파견 단속 강화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에 호응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정부 조사 결과 민주노총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제치고 제1 노총이 되면서 민주노총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부 정책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본지 12월 21일자 A1, 4면 참조
도급과 파견은 원청 소속 근로자가 아닌 근로자에게 일을 맡긴다는 점에서 비슷한 인력운용 방식이다. 하지만 도급은 근로자가 고용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지만, 파견은 고용계약은 파견회사(하청)와 맺었지만 업무 지시는 실제 일하는 원청에서 받는다. 즉 법으로 파견을 금지하고 있는 제조업 등에서 원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지휘·명령을 하면 불법파견(위장도급)이 된다.
새 지침은 2015년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판단할 당시 제시된 기준을 그대로 반영했다. 새 지침에 따르면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이 있거나 공동작업 등 하청 근로자가 원청 사업장에 실질적으로 편입돼 있으면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판단된다. 또 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인사·노무 관련 권한이 없거나 원청 업무와 구별되는 전문·기술성이 없어도 불법파견으로 처벌된다.
지휘·명령과 관련해 고용부는 하청업체 소속 현장대리인(현장소장)의 업무 지시도 원청의 결정을 전달한 수준이라면 파견이라고 봤다. 다만 원청의 지시라 하더라도 ‘노무 제공 방식’에 대한 지시가 아니라 ‘일의 완성’에 관련된 지시는 파견의 근거가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빨리 끝내주세요’는 적법이고, ‘이 방식으로 마무리하세요’는 불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고용부는 새 지침을 적용하더라도 불법파견 적발 사례가 급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견과 도급을 구분해왔다”며 “또 여러 가지 판단 기준을 분석해 파견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영계는 비상이 걸렸다. 파견과 도급을 현장에서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은 ‘상당한 지휘·명령’과 ‘원청사업으로의 실질적 편입’ 등 추상적인 개념이 새 지침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어느 정도의 업무 지시가 도급과 파견을 가르는지, 허용되는 공동작업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에 대한 현장 근로감독관들의 판단이 기업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법원에서도 판단이 엇갈리는 ‘편입’이라는 불분명한 개념을 사업장 감독에 활용되는 행정지침에 넣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현장 감독관들이 비정규직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가급적 불법파견으로 판단하는 행정편의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동계에서 오래전부터 불법파견 단속 강화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이에 호응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정부 조사 결과 민주노총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제치고 제1 노총이 되면서 민주노총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부 정책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