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도시 서식환경 열악…농촌에선 여전히 생태계 허리 역할

약 반세기 전까지 한국에서 쥐의 존재감은 컸다.

대대적인 쥐 소탕 운동이 주기적으로 벌어졌다.

1960년대 쥐 한 마리를 잡으면 당시 돈으로 5원의 보상금이 걸리고, 보상금을 위해 추경이 편성될 정도였다.

[2020 쥐띠해] "시골쥐·도시쥐 어디로 갔쥐?"…개체 수는 비슷
하지만, 2020년을 맞는 우리에게 쥐는 관심거리가 아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중국에서처럼 페스트 같은 무시무시한 병이 번지지도 않는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쥐를 치면 자동완성으로 '쥐띠' 등 내년에 대한 검색어, G로 시작하는 쇼핑몰 등만 나온다.

정부나 학계에서도 감염병 관리 이외에 예전처럼 대대적인 개체 수 조사나 쥐잡기 운동을 하지 않는다.

학계의 연구 활동도 활발하지 않다.

한국인들의 눈에서, 생각 속에서 희미해진 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20년 쥐의 해를 맞아 행방을 수소문해봤다.

[2020 쥐띠해] "시골쥐·도시쥐 어디로 갔쥐?"…개체 수는 비슷
◇ 도시쥐 : 있는 듯 없는 듯 더부살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쥐의 위세가 크게 사그라들었다.

콘크리트 철근 구조물이 늘어 쥐가 갉아 파고 들어갈 틈이 없어지고,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제도 장착으로 먹을 것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쥐를 상대하는 전문가들은 "쥐들이 도시 어딘가에 굴을 파고 살고 있다"고 말한다.

방역업체 세스코 관계자는 30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인간 세상에 파고들어 살고 있다"며 "특히 겨울에는 쥐들이 따뜻한 인간 주거지로 들어오기 때문에 도심에서도 문의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올해 부산의 한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에서는 쥐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다 감독관에게 잡혔다.

2014년에는 한강 변 고급 아파트촌에서 쥐 출몰 소동이 벌어지는 등 가끔 사건·사고로 소식을 전한다.

[2020 쥐띠해] "시골쥐·도시쥐 어디로 갔쥐?"…개체 수는 비슷
최근에는 퇴치의 대상보다는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갈등 매개물로 도시 쥐가 존재감을 드러나기도 한다.

올해 봄 경기 안양시에서는 정기적으로 시행되던 쥐약 살포가 중단됐다.

쥐약을 먹은 길고양이 피해 등을 우려한 동물보호단체의 강한 반발 때문이다.

안산시도 2월 공원과 야산 등에 1천 포 분량의 쥐약을 살포했다가 수거했다.

공감과 연민의 범위가 인간에서 함께 사는 동물한테까지 넓혀져 생긴 현상이다.

인간이 쥐를 몰아내기 위해 고양이를 동원했던 예전의 삼각관계 양상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에 따라 방역 방식도 바뀌고 있다.

세스코 관계자는 "약품 살포보다는 쥐의 침입을 차단하는 데 주력한다"며 "카메라와 센서가 장착된 포획틀,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상황실까지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시골쥐 : 늘지도 줄지도 않고, 별일 없이 산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쥐와 관련된 질병 동향을 꾸준히 모니터링하지만, 쥐의 개체 수 등에 대해 대대적인 연구나 조사는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간접적 지표나 연구를 보면 쥐의 주요 터전인 농촌과 야생에서의 수나 세력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됨을 알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9 설치류 매개 감염병 관리지침'에서 설치류에 의한 주요 감염병 신증후군출혈열, 렙토스피라증 등 4가지 질병에 대해 분석했다.

이 질병들은 주로 농촌에서 발병률이 높으며 야외에서 활동하는 군인들도 가끔 걸린다.

조사 결과 신증후군출혈열 환자는 2009년 334명에서 지난해 506명으로 증가했으며 이후에도 300∼500명 수준을 유지했다.

렙토스피라증 환자 역시 2009년 62명에서 2018년 148명으로 늘었지만 2015년부터는 10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2020 쥐띠해] "시골쥐·도시쥐 어디로 갔쥐?"…개체 수는 비슷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여러 요소를 고려할 때 증감 수치는 큰 의미는 없고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발병된다"며 "쥐의 분비물 등으로 발생하는 질병 발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은 농촌 지역 쥐의 개체 수나 활동성 등이 큰 변화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10월에는 전남 무안지역에서 수확 철을 맞아 준비했던 농기계의 전선을 쥐들이 갉아 먹으면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는 등 '유해동물'의 면모를 종종 보이기도 한다.

[2020 쥐띠해] "시골쥐·도시쥐 어디로 갔쥐?"…개체 수는 비슷
농촌과, 더 나아가 자연에서는 쥐가 생태계의 허리 역할을 한다.

이우신 서울대 교수는 "쥐는 맹금류와 뱀, 육식 포유류의 주요 먹이원"이라며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지만, 이들의 개체 수나 현황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쥐도 비슷한 수로 유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