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세밑 한파가 들이닥쳤던 국회가 집권 여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강행으로 아예 꽁꽁 얼어붙었다. 자유한국당은 의원직 총사퇴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국회 전면 보이콧(의사일정 거부)을 시사했다. 여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는 6일부터 검찰 개혁 법안 통과의 고삐를 죌 계획이다. 올해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여야 ‘강 대 강’ 대치로 20대 국회에서는 경제 활력 법안과 민생 법안 통과가 물건너갈 판이다.
< 심각한 한국당 >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심각한 한국당 >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가 3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 “결사항전할 것”

심재철 한국당 원내대표는 31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여당의 만행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 폭거를 막지 못했다는 자괴감,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송구함 등 모든 감정을 모아 의원직 사퇴를 결의했다”며 “이 결기로 투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전날 의원직 총사퇴 방침을 밝힌 데 이어 국회 전면 보이콧까지 검토 중이다.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도 준비하고 있다.

새해에도 국회 마비 상황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1월 1일까지 송부해달라고 재요청했다. 2일 추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기 위한 수순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국당 의원은 “추 후보자는 장관으로서의 자질과 청문회에서의 태도, 자료 제출 등에 모두 문제가 있었다”며 “야당을 무시하는 임명 강행은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당은 공수처법 ‘날치기’ 통과와 추 후보자 임명 강행에 반발하는 여론전 차원에서 3일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 계획이다. 천막 합숙, 삼보일배 국민 사과, 21대 총선 불출마 결의 의견까지 나오며 비장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날 김도읍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잘못된 결정을 했으면 지도부가 총사퇴해야지, 선거를 앞두고 할 일도 없는 국회의원들의 총사퇴는 무엇을 보여주려는 쇼냐”고 말했다.
< 미소짓는 與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미소를 지으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소짓는 與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이 3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미소를 지으며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균 청문회’가 고비

7~8일로 예정된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인사청문회 역시 파행할 가능성이 높다.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대 총선을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인 16일 전엔 표결을 거쳐 임명절차를 마친다는 계획”이라며 “다만 총리 인준을 야당 동의 없이 밀어붙일 수는 없어 일정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의 총선 출마를 막으려는 한국당과의 치열한 샅바 싸움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 총리는 2017년 5월 25일 인사청문회 종료 후 6일 뒤인 31일 임명동의안 표결을 진행했지만 정 후보자의 경우에는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6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검찰 개혁 입법을 끝낸다는 방침이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기관을 해체하기 시작한 데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한다”며 “검찰개혁의 산봉우리가 아직 더 남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상정 계획을 미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당을 좀 더 설득하고,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난 27일 국회의장석을 점거하고 있던 이은재 한국당 의원에 대한 고발도 미루고 있다.

선거구 획정은 또 다른 뇌관

총선 선거구 획정은 여야 갈등의 또 다른 뇌관이다. 의원들의 ‘밥그릇’에 직접 연결돼 경색 국면이 심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날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 호남 지역 등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최대한 보장하기로 합의한 배경엔 군소정당 대표들의 지역구를 지키기 위한 ‘야합’이 있다는 게 한국당의 주장이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4+1 협의체가 선거구를 이리저리 찢어붙여 통폐합하는 식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구 대비 국회의원 선거구가 많은 광주·전북·전남·부산 순으로 선거구를 줄이는 것이 헌법 정신과 표의 등가성·비례성 원칙에 맞는다”며 “공수처법에 찬성표를 던진 분들이 앞으로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지를지 지켜보겠다.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겠다”고 말했다.

김우섭/고은이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