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순 中 트립닷컴 CEO, "우린 탐험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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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 뚫고 세계 2위 온라인 여행사 이끌어
직원 절반이 여성…'워라밸' 파격 지원
美에 유학 중국인 1세대
中 IT업계선 드문 여성 CEO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직원 절반이 여성…'워라밸' 파격 지원
美에 유학 중국인 1세대
中 IT업계선 드문 여성 CEO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미 경제전문지 포브스), 2019년 아시아 게임 체인저(아시아소사이어티)….
제인 순 트립닷컴(옛 시트립닷컴) 최고경영자(CEO)가 얻은 타이틀이다. 그는 2005년 중국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된 뒤 2016년 11월 제임스 량 트립닷컴 창업자의 뒤를 이어 CEO 자리에 올랐다. 이후 시가총액이 200억달러에 가까운 중국 최대, 글로벌 2위 온라인 여행사를 이끌고 있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CEO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문화혁명기, 닷컴버블 등 영향”
순 CEO는 1968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경력에 대해 “40년간의 중국 발전과 개방이 반영된 것”이라고 자평하곤 한다. 중국 문화혁명기(1966~1976년)에 태어나 개방정책의 혜택을 본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베이징대 법대에 다니던 중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플로리다대로 유학갔다. 순 CEO는 “내가 대학생 때 중국은 막 문을 열었고 덩샤오핑은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도록 장려했다”며 “미국으로 유학한 첫 중국인 세대였다”고 말했다.
순 CEO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들어갔다. 실리콘밸리는 당시 미국 최대 인터넷 포털인 AOL(아메리칸온라인)과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덕분에 큰 호황을 맞았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남편 존 우 전 알리바바홀딩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났다. 당시 남편은 야후에서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수석엔지니어였다.
2000년 이들 부부는 ‘닷컴 버블’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실리콘밸리가 닷컴 버블로 휘청일 때 때마침 남편 우 전 CTO에게 중국 인터넷기업 알리바바의 영입 제안이 왔다. 순 CEO는 “미국에 머물러야 할지,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매일 밤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순 CEO는 “당시 중국 경제는 연 8~10%, 미국은 3~4% 성장했다”며 “중국은 세계 시장과 연결해줄 인재에 목말라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내가 걸어온 모든 길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며 “이 추세를 따르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여행사 유일의 여성 CEO
트립닷컴은 순 CEO에게 2005년 CFO를 제안했다. 1999년 설립된 트립닷컴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던 때였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세계 곳곳의 여행지를 알리며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다. 트립닷컴이 중국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기까지 순 CEO의 공로가 컸다는 평가다.
현재 트립닷컴의 월평균 이용객은 1억5000만 명에 이른다. 상품 수 기준으로 세계 2위 온라인 여행사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미국 나스닥 상장 당시 주당 2.46달러에 거래된 이 회사 주가는 주당 33.54달러(작년 12월 31일 종가)로 올랐다.
순 CEO도 유리천장을 깨는 게 쉽진 않았다. 지금까지도 중국 IT업계는 여성 CEO가 손에 꼽힐 정도로 여성 진출이 적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트립닷컴 CFO로 일본에 갔을 때 파트너사 직원들은 나를 비서라고 생각하고 악수조차 청하지 않았다”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단지 젊은 여성이 CFO라는 걸 생각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딸의 엄마인 순 CEO는 ‘아이들을 두고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그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중국 IT업계의 ‘트렌드 세터’
순 CEO는 중국 경영계의 ‘트렌드 세터’로 불린다. 여성들을 위한 파격적인 정책들이 화제를 몰고 다녀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순 CEO를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은 것도 “글로벌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해 힘쓴 점”이 영향을 미쳤다.
트립닷컴은 임신한 여성에게 무료 택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환영 선물과 교육보조금(3000위안·약 50만원)을 준다. 사내 유치원도 운영한다. 미혼 여성 직원들에게는 난자를 냉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모유 수유 중인 여성 직원은 출장에 아이와 동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순 CEO는 여성 친화적 복지를 늘리는 이유에 대해 “연말에 나의 사무실에 들어와 승진을 요구하는 직원은 언제나 남성이었다”며 “여성 직원들에겐 내가 먼저 다가가 자신감을 느끼도록 격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데 책임을 느껴 직업을 포기하곤 한다”며 “그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립닷컴은 직원 4만 명 가운데 50% 이상이 여성이다. 여성 중간관리와 임원의 비율도 각각 30%, 40%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다수 IT회사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그는 “남성과 여성은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며 “여성은 팀 구성,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거래 성사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순 CEO는 “앞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첨단 차량, 우주여행 등이 여행산업을 바꿔놓을 날을 준비하고 있다”며 “미래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건 여행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탐험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며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제인 순 트립닷컴(옛 시트립닷컴) 최고경영자(CEO)가 얻은 타이틀이다. 그는 2005년 중국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된 뒤 2016년 11월 제임스 량 트립닷컴 창업자의 뒤를 이어 CEO 자리에 올랐다. 이후 시가총액이 200억달러에 가까운 중국 최대, 글로벌 2위 온라인 여행사를 이끌고 있다. 중국 정보기술(IT)업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CEO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문화혁명기, 닷컴버블 등 영향”
순 CEO는 1968년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의 경력에 대해 “40년간의 중국 발전과 개방이 반영된 것”이라고 자평하곤 한다. 중국 문화혁명기(1966~1976년)에 태어나 개방정책의 혜택을 본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베이징대 법대에 다니던 중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플로리다대로 유학갔다. 순 CEO는 “내가 대학생 때 중국은 막 문을 열었고 덩샤오핑은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도록 장려했다”며 “미국으로 유학한 첫 중국인 세대였다”고 말했다.
순 CEO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들어갔다. 실리콘밸리는 당시 미국 최대 인터넷 포털인 AOL(아메리칸온라인)과 웹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덕분에 큰 호황을 맞았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남편 존 우 전 알리바바홀딩스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만났다. 당시 남편은 야후에서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수석엔지니어였다.
2000년 이들 부부는 ‘닷컴 버블’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았다. 실리콘밸리가 닷컴 버블로 휘청일 때 때마침 남편 우 전 CTO에게 중국 인터넷기업 알리바바의 영입 제안이 왔다. 순 CEO는 “미국에 머물러야 할지,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매일 밤 고민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순 CEO는 “당시 중국 경제는 연 8~10%, 미국은 3~4% 성장했다”며 “중국은 세계 시장과 연결해줄 인재에 목말라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내가 걸어온 모든 길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며 “이 추세를 따르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여행사 유일의 여성 CEO
트립닷컴은 순 CEO에게 2005년 CFO를 제안했다. 1999년 설립된 트립닷컴이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던 때였다. 그는 중국인들에게 세계 곳곳의 여행지를 알리며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다. 트립닷컴이 중국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기까지 순 CEO의 공로가 컸다는 평가다.
현재 트립닷컴의 월평균 이용객은 1억5000만 명에 이른다. 상품 수 기준으로 세계 2위 온라인 여행사로 자리매김했다. 2003년 미국 나스닥 상장 당시 주당 2.46달러에 거래된 이 회사 주가는 주당 33.54달러(작년 12월 31일 종가)로 올랐다.
순 CEO도 유리천장을 깨는 게 쉽진 않았다. 지금까지도 중국 IT업계는 여성 CEO가 손에 꼽힐 정도로 여성 진출이 적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트립닷컴 CFO로 일본에 갔을 때 파트너사 직원들은 나를 비서라고 생각하고 악수조차 청하지 않았다”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단지 젊은 여성이 CFO라는 걸 생각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딸의 엄마인 순 CEO는 ‘아이들을 두고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했다. 그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중국 IT업계의 ‘트렌드 세터’
순 CEO는 중국 경영계의 ‘트렌드 세터’로 불린다. 여성들을 위한 파격적인 정책들이 화제를 몰고 다녀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이 순 CEO를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은 것도 “글로벌 여성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해 힘쓴 점”이 영향을 미쳤다.
트립닷컴은 임신한 여성에게 무료 택시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환영 선물과 교육보조금(3000위안·약 50만원)을 준다. 사내 유치원도 운영한다. 미혼 여성 직원들에게는 난자를 냉동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모유 수유 중인 여성 직원은 출장에 아이와 동행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순 CEO는 여성 친화적 복지를 늘리는 이유에 대해 “연말에 나의 사무실에 들어와 승진을 요구하는 직원은 언제나 남성이었다”며 “여성 직원들에겐 내가 먼저 다가가 자신감을 느끼도록 격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여성이 아이를 키우는 데 책임을 느껴 직업을 포기하곤 한다”며 “그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립닷컴은 직원 4만 명 가운데 50% 이상이 여성이다. 여성 중간관리와 임원의 비율도 각각 30%, 40%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다수 IT회사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그는 “남성과 여성은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해야 한다”며 “여성은 팀 구성,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거래 성사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순 CEO는 “앞으로 가상현실, 증강현실, 첨단 차량, 우주여행 등이 여행산업을 바꿔놓을 날을 준비하고 있다”며 “미래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건 여행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탐험할 때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며 “새로운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