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디자인미술관 '매그넘…'展
국립현대미술관 홀저 작품전
갤러리 현대 '인물, 초상…'展
파라다이스집선 승효상 개인전
잡스처럼 시각예술을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모든 콘텐츠산업에 공통적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 ‘창의 엔진(creative engine)’으로 인식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다. 미술에서 혁신 아이디어와 함께 소비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비법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기업인들이 연초에 한 해를 구상하고 경영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화랑과 미술관 전시를 소개한다. 도슨트(미술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작품을 감상하며 문화적 소양도 쌓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사진 대가들의 눈에 비친 파리
세계적인 사진 대가들의 도전미학을 배울 수 있는 전시회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마련됐다. 다음달 9일까지 이어지는 ‘매그넘 인 파리(Magnum In Paris)’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마크 리부, 엘리엇 어윗 등 20세기 사진의 신화로 불리는 ‘매그넘 포토스’ 소속 작가들의 사진 226점을 통해 파리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다. 파리의 근대화와 산업화, 2차 세계대전 등 혼란한 시기를 카메라 렌즈로 포착했다. 파리의 역동적인 현장을 짚어낸 손끝의 떨림이 감동적인 사진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미국 여성 미술가 제니 홀저의 작품전은 개념미술의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1층에 설치된 신작 ‘당신을 위하여’는 16m 높이 천장에 매달린 LED(발광다이오드) 사인 작품이다. 천장에 매달린 6.4m의 직사각형 기둥엔 시인 김혜순을 비롯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소설가 한강 등 다섯 명의 작품에서 발췌한 텍스트가 물 흐르듯 쉼없이 내달린다. 가로 37m, 세로 9.4m의 로비 벽면에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언어를 매체로 탐구한 초기작 ‘경구들’과 ‘선동적 에세이’ 등 포스터 1000여 장이 채우고 있다. 기본적 소통 채널인 언어를 기반으로 권력과 희망, 억압, 폭력 등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를 부각시키는 텍스트 미학이 이채롭다.
근·현대 거장들의 기발한 색채미학
한국 근·현대 미술 거장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업에 응용하고 싶다면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와 대구미술관을 찾아보자. 갤러리 현대 개관 50주년 기념전 ‘인물, 초상 그리고 사람’에는 고희동, 박수근, 김환기 등 쟁쟁한 화가 51명의 명작 71점이 걸렸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산업화 시기에 탄탄한 화력(畵力)을 쌓은 대가들의 작품에서 기업 경영과 관련한 영감을 받을 만하다. 대구미술관의 ‘이인성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는 1931년부터 1940년대 말까지 대구와 일본을 오가며 작업한 걸작 20점이 걸렸다. 1930~1940년대에 황금기를 맞으며 근대기 거장으로 성장한 작가의 치열한 역정을 기업 성장과 발전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건축을 예술영역으로 끌어들인 노하우를 알려주는 전시회도 놓칠 수 없다. 다음달 29일까지 서울 장충동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집에서 펼쳐지는 건축가 승효상의 개인전 ‘감성의 지형’이다. 건축 모형 21점과 사진 72점을 통해 그가 걸어온 30년 예술 인생을 펼쳐 보인다. 대표작 ‘수백당’(1999), ‘하양 무학로 교회’(2018) 등에는 ‘건축의 본질은 공간에 있고, 건축이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승효상의 ‘선한 건축 철학’이 배어 있다.
기업인이 가볼 만한 디자인 전시회도 있다. 오는 4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핀란드 디자인 특별전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전이다. 핀란드국립박물관과 협업한 이 전시회에는 고고학 유물부터 민속품, 현대 산업디자인 제품, 사진과 영상 등을 총망라했다. 글로벌 메가 트렌드인 4차 산업혁명과 디자인의 미래를 파악할 수 있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미술에는 작가들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기업인들이 작품에 담긴 스토리를 통해 혁신과 도전정신을 배우고, 희망의 메시지를 체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